posted by 사막위의 돌고래 2018. 5. 19. 13:25

영애는 느긋하기를 원한다.



제2장 수인 용병단


33.불길한 예감




"오늘이야말로 나에 굴복하게 해주겠다. 나의 천사여!"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이 눈을 희번덕이는 악마에게 나는 어색한 미소를 보여준다.
그리고 즉시 뛴다.

한눈도 팔지 않고 결계가 펼쳐진 가게로 향한다.

"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어엇!"

즐겁게 들뜬 목소리가 쫓아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지만 달린다.

오른팔로 자루를 껴안고
왼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잡고
부츠로 땅바닥을 박차고
전력으로 달렸다.


이런 운동, 오랜만이다.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피해가고, 다가오는 섬뜩한 목소리에서 도망 치고, 넓은 광장으로 나간다.
나의 찻집은 이제 눈 앞이다.


"어림없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다시 가까워 진다.
쳐다보지 않고 오로지 하얀 문을 향했다.
계단을 뛰어넘어 메모를 끼운 문을 열고 카운터 위의 자수정에 손을 뻗지만.

쿵.

다리가 당겨지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돌아보면 나의 왼발이 검은 손톱의 손에 잡혀 버렸다.
악마가 달려들어 잡은 듯, 악마도 현관에 넘어져 있다.
결계가 쳐져 있는 것은 하얀 문 안쪽.
억지로 당기더라도 악마의 손이 침입하는 것을 거부하기에 다리가 결계에 걸린다.
자수정에 닿지 않는다.

염력의 반지도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다.
최악이다.


"므흐흣흫흐……"

아슬아슬하게 나를 잡은 악마가 웃는다.

"이제 적당히 포기하세요, 악마 벨제타."

씨알도 안 먹힐 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든 발을 빼려 했다.

"설마 저 슈나이더 바보가 로냐를 놓아버리다니-. 그래도 더러워지지 않다니- 정말이지 진짜 천사야. 이렇게나 하얗고 눈부신 인간, 처음 봤다구. 너무 속이 상해서 반드시 나에 굴복시키겠다!"

역시 허사였다.
악마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기 쉬운 인간을 선호하며, 가호의 주술을 건 인간이나 나 같은 인간은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싫으면 가만히 두면 좋을 텐데 악마 벨제타는 오히려 집착했다.
왜냐하면…….

"방해자도 없고……그 눈에 거슬리는 순진한 마음을--나로 물들이겠어!!!"

으스스하고 오한이 달리며 소름이 돋는다.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는 벨제타는 나를 굴복시켜 자신의 마력으로 더럽히고 싶어 한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기분이 나쁘니 그만해!
몇번이나 말했는데!


"무슨 기분나쁜 말을 하는거야."

쿵, 하고 벨제타의 얼굴이 바닥에 박혔다.
머리를 짓밟은 것은 파란 하늘에 녹아 버릴 것만 같은 털을 가진 늑대씨였다.

"치세씨……"

멍해져 버리고 만다.

"아가씨, 괜찮아?"
"류세씨..."

벨제타의 허리를 짓밟아 움직임을 봉하고 있는 순백의 치타씨까지 함께 하고 있다.

"그, 윽, 웃기지,마, 짐승 주제에 감히." 라고 벨제타가 뭔가 말하며 허우적대고 있다.
하지만 인간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 수인 두 사람에게 짓밟혀서 일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얼굴이 현관 바닥에 밀착한 채다.

"시끄러- 변태"
"닥치고 있어."


치세씨도 류세씨도 가감따윈 없이 쿡쿡 짓밟는다.

"아, 감사합니다! 그대로 눌러주세요!"

자유롭게 된 나는 곧장 일어서서 주문을 외웠다.
마법으로 만든 공간을 열고 거기에 보관했던 마법서에 손가락으로 올린다.
펼치는 페이지는 봉인 마법이 있는 부분.
거기에 적힌 주문을 입에 올리며 마력을 낸다.
그 마력을 베는 것처럼 성호를 긋는다.

"피하세요!"
"우옷?!"


확 하며 빛이 쏟아져 한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금방 돌아온 시야에 비춰 진 것은 치세씨와 류세씨.
그리고 계단 밑에는 순수한 검정색의 사자 시제씨와 녹색 자칼 세나씨도 있었다.

"괜찮나요? 여러분. 상태가 나빠지지는 않았습니까?"

가호의 주술을 걸어 뒀기 때문에, 악마의 마력에 노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확인을 한다.

"방금 그거 뭐야? 마법인가……" 라고 치세씨는 고개를 갸웃갸웃 하면서도, 가게 안에 들어갔다.
"봉인 마법 같은 거잖아" 라고 말한 류세씨도 안에 들어간다.

"별로 아무렇지도 않지만...마술사 그레이티아가 봉인해야 할 것 아니었나?"
"……아"

눈 앞까지 다가 온 세나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말에 겨우 떠올렸다.

"아…… 그…… 그랬습니다..."

오늘의 가장 큰 실수에 아연해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푸하하하! 너, 깜빡하고 봉인해버렸구나! 푸하하!"

치세씨가 의자 위에서 껄껄 웃었다.
네, 웃으세요.

"아가씨, 귀엽구만" 하며 류세씨도 놀린다.


" 죄송합니다……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만"


치세씨와 류세씨가 누르고 있어 주었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틈에 봉인해야 했다.
방심할 수 없는 악마이니 어쩔 수 없었다.

나의 봉인로는 기껏 2주 정도가 한계인지라, 봉인 파훼를 잘하는 벨제타라면 금방 나오게 된다.
그래서 뛰어난 마술사인 그레이님의 봉인이 필요 한 것이었다.

"봉인 위에서 다시 봉인하지 그래? 이중 봉인은 가능해?"

"궁합에 따라 가능합니다만……지금 봉인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장소에 날리는 마법으로……술자 본인도 찾을 수 없습니다."
"……너의 실수네. "
"으으……네."


봉인이 풀리지 않기 위한 옵션이 있는 마법을 사용했으니 그레이님에게 이중 봉인을 받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수색도 불가능하다.
절호의 기회였는데, 뼈아픈 실수다.

세나씨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빌려 일어선다.

아아, 육구.
치유됩니다.
복슬복슬하고 말랑말랑하다.


"그치만, 어이 없네. 네가 누군가에 쫓기며 달리고 있다고 들어서 악마라고 생각하고 달려갔는데...치세와 류세에게 눌렸을 뿐인데 움직이지 못한다니, 맥 빠져."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이네요. 아무 술수도 부리지 않고 달려들어 온 것 같아요……우연히 들키고 말았다니, 최악이지만요."


불운이 겹치면 악마가 찾아온다 라는 말이 있다.
불운이 이어지면 마지막에는 악마가 와서 파멸시킬 수 있으니, 빨리 정화하는 것이 좋다는 이 세상의 속담.


어떻게 이 광활한 오프리룸국 안에서 나를 찾은 것일까.
오르비아스님은 거리에 펼쳤던 결계 마법으로 나를 감지했다고 하지만, 벨제타도 우연히 근처에 있어서 알아챘던 것이라면 한참전에 나타났어야 했다.
…….왠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재미 없어"
"승리를 기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만약을 위해서, 정화할께요. "

특히 별다른 피해는 없지만, 가볍게 정화를 하기 위해 2층에서 세이지를 가져왔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피운다.
후각의 강한 수인씨들에게 참아달라고 했다.

특히 악마가 내팽게 친 파우치가 신경쓰여, 그릇과 함께 둔다.
하얀 문을 닫고, 접객을 시작하려 했다.

「……!」

창밖에 지인이 있던 것 같아 나는 다시 문을 연다.
머리 위에서는 딸랑딸랑 하고 종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그 사람의 그림자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왜그래? 아가씨"

류세씨가 물어왔다.
나는 광장을 둘러보고 확인을 한다.
유리스가 거기에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 잠깐 동안 호위를 맡아 준 사람.
지금은 오라버니의 호위인 부하.

만약 착각이 아니라 정말 그 였다면-……오라버니에게 들켰는지도 모른다.
악마 벨제타의 꼬리를 쫒아 발견한 것일까?

그런 최악의 불운을 가져 오는 것이 악마.
의식이 아득해 질 것 같아 문고리를 단단히 쥐었다.

"저기, 로냐?"

어깨에 손이 닿아, 무심결에 움츠렸다.
뒤에 있던 세나씨도 손을 옴츠렸다.

"……얼굴, 시퍼런데.  악마의 마력에 당하기라도 한거야?"
"아, 그...오랜만에 뛰어서 조금 피곤한 것 같아요. 좀 앉아도 될까요?"

쓰러지지 않도록 류세씨가 밀어 준 의자에 앉았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오랜만에 전력으로 달렸다.
다리가 아파 드레스 위에서 문질렀다.

"그 정도로 지쳐 버린 거야? 허약하네."
" 부끄럽네요."
"……강한지 약한지 모르겠네. 점장은. "
"네?"

카운터 위에 둔 쇠고기를 걱정하는 치세씨가 나에게 말한다.

"아가씨, 주물러 줄까?"
" 괜찮습니다."

류세씨가 싱글벙글 보고 웃었기에 나도 싱긋 웃어 주었다.
얼른 물러섰다.

포오옷 하며 가게 한가운데에 빛이 켜진다.
하얀 빛의 고리에서 휘리릭 하며 공중제비로 등장한 로트가 세명이다.
양손을 위로 한 포즈.

"푸하!" 하며 류세씨는 스위치가 올라갔는지, 숨을 크게 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요정 로트"

내가 인사를 하고 있으니, 세나씨가 옆에 와 쭈그리고 앉았다.

"라클레인들에게 악마가 왔다고 전해 줄래?"
"에, 그런……"

물리쳤으니 일부러 전하러 보내지 않아도 좋다고 그만두게 하려 했다.

그럼 악마라는 단어에서 로트들은 벌벌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새파란 얼굴을 하여 셋 모두 우왕좌왕하며 깜짝 놀란 뒤, 아직 빛나고 있던 순간 이동의 마법진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훅 하고 빛이 사라졌다.

그 뒤, 곧이어 가게 바닥 전체가 확 하고 빛에 휩싸인다.

공기가 바뀌었다.
따뜻한 빛이 위에서 쏟아지는 숲 속.
페리도트 색의 빛과 잎을 흔드는 나무들에 둘러싸인 장소에 우리는 서 있었다.
연꽃의 요정 로트들도 나도 자신의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는 순간 이동 마법을 강제 소환처럼 사용하는 것은 정령이기에 가능한 힘이다.

"나의 벗이여! 괜찮은가? 무슨 일을 당한 것 아닌가!?"

다가와서 손을 뻗치며 마력의 이변을 감지하려는 2미터 크기의 남자.
머리에는 훌륭한 사슴 뿔의 왕관을 닮은 가지가 뻗어 있고, 피부는 어린 가지 색.
박혀있는 듯한 대형 페리도트의 눈동자는 나를 비춘다.
우유빛 광택으로 옷을 입은 그가 식물을 관장하는 정령 오리페도트.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 안절부절 못하는 손을 잡고 웃어 보인다.
악마가 나를 겨냥한 후, 실제적인 손해는 거의 없는 것과 같다.
굳이 말하자면, 따라다닐 뿐이다.
이상할 만큼 병적으로.


"세이지다, 정화에 좋다"

세이지의 가지를 받게 되었지만  정화는 이미 끝났다.

"그레이 티아는 어디있는가?"
"아, 그게……"


마음대로 데리고 와 버린 수인 용병단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오리페도트는 그레이님을 찾는다.
정령에게 내 실수를 자백하기 전에 화창한 공간에 강풍이 불어 닥친다.

눈도 못 뜰 바람 속에서 주위에 그늘이 펼쳐진 것을 알아 차렸다.
머리 위에 라클레인이 있다.

"악마는 어디냐!!!"

거센 바람과 함께, 으스스 한 목소리가 울린다.
착각해 버린 것 같다.

"제가 봉인했습니다!"

라클레인에게 들리게 목소리를 높여 악마가 없다는 것을 알린다.
그러자 바람이 그쳤다.

"어찌된 것이냐. 그레이 티아는 어디가고."

무수한 날개와 함께 내려 온 라클레인은 사람의 모습이다.
그래도 날개인 채 그대로인 손으로 내 등을 톡톡 두드리며 답을 재촉한다.
거기에서부터는 세나씨가 대신 전했다.

"로냐가 순간적으로 봉인 했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대."
"……평소의 봉인 마법을 썼나. 그대 답지 않다"
"면목 없습니다……"

여러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것을 헤아린 라크레인, 그에게 고개를 들 수 없다.


"어쨌든, 그레이를 부를까. 녀석이라면 어떻게 찾을지도 모르지"
"안 됩니다, 위험한 사태는 없었어요. 바쁜 그레이님을 부르면 민폐입니다."
"무슨 소리! 로냐를 위해서라면 어떤 의식도 팽개치고 달려올거다!"
"그레이님이 중요한 의식을 내던질 리 없습니다."
"……"


마술사 그레이 티아님은 정말 마법을 좋아하는 분이다.
마술사로서 복잡한 마법의 의식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아무리 아끼는 후배라고 해도 쉽게 불러내서 좋을 사람은 아니다.

급한 일은 없으니 내가 편지를 써서 알리도록 하자.
그렇게 말하며 오리페도트를 달랬다.


구궁구궁 하며 커다란 것이 다가오는 소리가 귀에 닿는다.
돌아보면 큰 나무가 있다.
아니, 엄청 큰 애벌레다.
천년 애벌레씨다.

위에는 토이 푸들 같은 솜털의 요정 피 들이 타고 있다.

"뭐야 네놈! 그르르릉!"

첫 대면이라 치세씨가 소리내며 위협했다.
그는 아무래도 낯을 가리는 지 첫 상대는 경계심 드러내고 만다.

온후하고 소심한 천년 애벌레씨는 급정지한다.
귀여운 눈동자 가득 눈물이 고인다.
커다란 몸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치세씨 천년 애벌레씨입니다. 미안해요 크기 때문에 놀라서 버린거에요. 오랜만입니다."

위험하지 않다고 전한 뒤, 천년 애벌레씨에게 인사하며 넓은 이마를 쓰다듬는다.
이마는 바위같이 딱딱하다.
떨림이 멎자 천년 애벌레씨의 위에서 밤색의 복슬복슬한 털 덩어리 2등신의 솜털의 요정이 둥실둥실 내려 왔다.
밑에서 전부 받아 줄 수는 없었지만, 다들 들떠있는 것이 느껴진다.

솜털의 요정 피는 코를 비비며 인사한다.
내밀어진 피의 코에 내 코를 맞붙이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코와 코를 부빈다.
복슬복슬이 잔뜩 있다.

사사삭 하는 풀숲을 달리는 소리가 들렸는가 싶으면 이미 늦었다.
새하얀 복슬복슬이 나의 몸을 향해 휙 날아들고 있다.
숲의 아기 고양이, 페리스다.
꼬리가 가장 복슬복슬한 새하얀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들.
흰 고양씨는 장난 꾸러기 기질이 있다.

이제 온 몸이 털 투성이다.



"자, 돌아갑시다……응? 어라? 치세씨와 류세씨는?"

라클레인이 바람으로 털을 날려 준 뒤 일어서서 카페에 돌아가려 하였다.
그런데, 푸른 늑대씨와 하얀 치타씨가 없다.

"페리스을 쫓아갔어."
"네?"

세나씨가 가르쳐 주고는 그 자리에 누웠다.
두 사람은 놀러 가고, 세나씨는 낮잠.
가게로 돌아가지 않는 건가요?

"식사는 나중에 여도 좋으니까. 너도 쉬어. 아까 얼굴이 파랬으니까 한숨 자는 것이 좋아."

그렇게 걱정해 주는 세나씨 위에 로트들이 올라타고 피들은 세나씨의 옆에 기댔다.
요정 역시 낮잠을 자려는 모양이다.

"그래 그렇구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나의 벗이여!"

푸수숙 하며 풀잎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침대 대신 나를 받쳐주었다.
오리페도트가 나를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푹식푹신한 풀의 침대에 감싸이면 일어날 수 없다.

천년 애벌레씨가 옆에 붙어, 딱 맞게 햇빛을 가려 주고 있어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몸에 힘이 빠진다.
눈꺼풀이 닫힌다.
풀섶에서 따스한 부드러움을 느꼈다.
기분 좋다.

왜 아까까지 마음이 술렁거리고 있었을까. 라고 의문스럽게 느꼈다.
오라버니가 고함지르는 모습이 떠올라 눈을 뜬다.
그것이 정말 유리스라면 지금쯤 집에 찾아왔을까.
그렇다면 가게에 가기 싫어진다.
내가 돌아갈 곳안데.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캄캄해졌다.
내 위로는 칠흑의 상의가 덮여진다.
얼굴을 바로 위로 돌리면 순수 검정색의 사자씨가 있다.

그러고 보니 시제씨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낮잠 자도 괜찮은 걸까?
묻는 것 보다 빨리 시제씨의 손 끝이 닿았다.
통통한 검은 집게 손가락이 내 볼을 간질인다.

마치 그 손가락이 마음을 풀어 준 것처럼 느긋하게 마음이 느슨해졌다.
그리고 뺨을 따라 쓰다듬는 손가락에 재촉을 받아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따끈따끈한 맑은 공기와 탐스럽고 부드러운 풀 양쪽에 휩싸이고, 북실북실과 말랑말랑이 달라붙어있는 최고의 낮잠이다.




눈을 뜨자 시제씨의 상의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래에는 모르는 사이에 돌아온 류세씨가 누워서 잠을 자고 있고, 옆에는 큰 대자로 호쾌하게 잠든 치세씨가 있다.
풀 침대에 기댄 시제씨도 팔짱을 끼고 잠들어 있었다.

천년 애벌레씨의 꼬리 끝을 베개로 삼은 세나씨도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그 외에도 숲의 아기 고양이 페리스들도 피와 로트도 쿨쿨 자고 있다.

잠든 얼굴을 보면 또 같이 자고 싶어진다.
하지만 눈을 떴으니, 배를 곯고 있을 치세씨들을 위해 한발 먼저 가기로 했다.


아까는 불안했지만, 아무런 주저 없이 돌아갔다.
가게는 변함이 없으며 방문자가 온 흔적도 없다.
휴우하고 가슴을 쓸어 내린다.

"당분간 악마가 오지는 않을 텐데, 뭣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건가?"

따라온 라클레인이 미간에 주름을 지었다.
전에 오라버니를 찢어 주겠다고 웃고 있었기에 들킬 수 없다. 그에게만은 말 할 수 없다.
오라버니와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앉아 계세요.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이야기를 회피하며 그대로 놓여 있던 소고기를 확인한다.
놔뒀을 때 마법을 걸어 놓았기에 별 이상이 있지 않다.
밑 간을 하고 양념을 만들어 간다.

"악마가 나타나면 부르라고 했을텐데"
"자수정과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을 잃어버렸어요……"
"앞으로는 잊지 말고 몸에 달아 놓아라."
"네, 마음속에 새겨두겠습니다."

라클레인에게 말하며 부글부글 양념을 끓이고 있다가 깜짝 놀라며 깨달았다.

나도 참, 시제씨의 갈기가 눈앞에 있었는데 쓰다듬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 쓰다듬을까 생각했는데, 그 순간 오리페도트가 보내줬는지 수인 용병단씨가 돌아오고 말았다.

"점장- 배고파."


아쉽지만, 치세씨의 그 말이 나와 기쁨을 느낀다.

라클레인은 다시 한번"다음에 불러라"라고 못 박은 뒤 시원스럽게 돌아갔기에, 언제나 처럼 그들과 오후를 보냈다.

그리고 밤은 무서운 이야기에 겁먹은 아이처럼 침대에 기어들어가서 잤다.
아침에는 별일 없이 기분 좋게 깨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기에, 나는 이미지체인지를 하기로 했다.

하늘색이 섞인 흰 머리에 마법으로 조제한 약초를 바른다.
물결 웨이브 파마의 긴 머리는 불꽃 같은 선명한 새빨간 머리로 바꾼다.
이것만으로도 한 순간 보면 모를 것이다.
그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하얀 리본으로 묶어 놓았다.
흰 블라우스에 브라운의 치마를 맞추고, 그 위에 앞치마를 입는다.

창문을 통해 봐도 나라고 알 수 없을 것이다,라고 타이르며 용기를 내고 오늘도 가게를 열었다.



"우와! 놀랐어! 어떻게 한거야? 한순간 로냐쨩이라고 알아채지 못했어"
"이미지 체인지 해 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 좋네, 귀엽다구!"

방문한 손님 모두가 놀라면서도 칭찬했다.
딴사람 같다고 했기에 뜻대로 된 것 같다.

어제 쫓겨다녔던 이야기도 가볍게 무마시키며 마법으로 물들인 이야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으니, 오르비아스님이 왔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가게 안에서 오르비아스님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뜬다.

"……안녕, 로냐 점장. 불타는 듯한 아름다움이다."

당황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오르비아스님이 칭찬을 한다.
정말 기품 있는 칭찬이다.

"안녕하세요 비아스씨. 조금 바꿔 봤습니다."

오르비아스님에게 웃어 보이면 미소를 돌려주었다.

"잘 어울린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그대의 열의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오르비아스님이 나에게 손을 뻗었다.
머리에 닿으려고 했지만, 그 전에 다시 품으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언제나의 네가 가장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제나 그대를 좋아한다."

깔끔한 고백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놀랐다.
이렇게도 순순히 상대에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그가 솔직하게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오늘은 커피 테이크 아웃을 부탁한다."
"네, 알겠습니다."

동전을 건넸기에, 이쪽도 곧 준비한 커피를 건네주었다.
오르비아스님과 엇갈려 들어온 세레나씨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가게 한가운데에서 걸음을 멈추고 놀라는 표정.
그렇지만 누구와도 다른 말을 터뜨렸다.

"안 어울려!"

들떴던 만큼 큰 타격인 한마디다.

"그, 그런가요?"

지금까지 상처 받지 않도록 거짓말을 해 주고 있던건가요,라고 주위를 힐끔거린다.
모두들 아침 식사를 입에 담고 있으니 고개를 흔들며 거짓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평소의 로냐 점장이 좋아!"
"세레나씨는 솔직합니다……"

단언한 세레나씨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혹시 오르비아스님은 솔직함을 봉인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비아스님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선언한대로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알게 되다니, 복잡하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진정되지 않아-……"

슬프게 말하게 하면서, 세레나씨는 맥없이 고개를 수그린다.

"홍차와 케이크 테이크아웃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힘없이 돌아갔다.

아름답고 가련한 세레나씨의 악평에 자신감이 상실되었지만, 건강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외로움이 크다.
내일 되돌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원래 이번에는 이미지 체인지를 즐기는 게 아니라 작은 변장이 본래의 목적이었다.
오라버니를 경계하는 할아버지에게서, 친구인 렉시, 헨젤에게 은신처를 알리는 편지를 보내는 것을 자제하라고 알려졌었다.
그런 오라버니에게서 숨기 위함 이었다.

하얀 문에서 오라버니가 나타나지 않았다.
유리스가 발견한 것이라면 오라버니가 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분명 악마의 출현 때문에 환각이라도 보고 만 것일까.

오늘 밤은 머리의 마법을 풀어 두기로 하자.




힘을 빼고 12시를 맞이했다.
뭔가를 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손님 4명의 그림자가 들어왔다.
하지만 수인 용병단이 아닌 것을 키로 알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웃음으로 맞이하며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뒤로 돌았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참으며 부엌으로 발을 내디딘다.

"여기, 평판이 좋다고 들었는데, 한낮인데 비어 있구나"

남자가 나에게 그렇게 말 하면서 오른쪽 앞에 마주 앉았다.
네, 하고 뒤집히는 소리로 대답했다.

"케이크 평판이 좋은 집이라고 했잖아!!"
" 떠들지 마라, 앉아라."

여자의 목소리.
이것은 잘 못 본 것이 아니라고 실감했다.
그들은 아는 사람이다.

처음에 입을 연 남자는 부르크 하르트 남작 가문의 당주 하루토님이다.
전 당주가 트레저 헌터로 과거 도난당한 왕가의 보물을 되찾아 작위를 받은 가문이다.
하루토님 자신도 트레저 헌터로 활약하고 있다.
그들은 그 일행이다.


전에 수업의 과제로 외출 중에 우연히 만나 내 힘을 빌리는 조건으로 트레져헌터를 체험 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일행 모두 아는 사이였다.
마침 우연히 들른 것 같다.
그들은 아직 눈치 채지 못했다.
색 덕분에 나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다.
효과는 있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고 머리를 풀 회전시킨다.
곧장 부엌에 들어가 변신 마법을 사용하자.
빨간 머리의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면 된다.
다행히 하루토님은 마법에 자신이 없다.
다른 사람도 그렇다.
아마도 이 방법으로 잘 될 것이다.

"어라라라? 역시!"

한 걸음 한 걸음과 부엌으로 피신하려는데, 그 전에 여자가 끼어들었다.

"이 냄새, 로냐 아가씨다냐!"

아차!
이 사람이 있었다!

만면에 미소를 띈 그녀의 머리는 빨강이었다.
열매처럼 보이는 그녀의 머리색.
불타는 듯한 선명한 붉은색은 끝이 살짝 말린 단발 보브컷.
목에는 검은색의 굵은 옥 목걸이.
어깨 부분을 노출한 오프 숄더의 검은 셔츠는 몸에 밀착되어 있다.
풍만한 가슴 앞에 얇은 손이 올라가 있다.
뾰족한 손톱을 가진 손에는 손가락이 두개 정도만 노출된 장갑을 끼고 있다.
아래는 하이 웨스트의 반바지를 입고 잘록한 부분도 드러낸 하이 롱 부츠로 섹시한 다리까지 화려하게 뽐낸다.
허리 뒤에 있는 포치 밑에는 길고 빨간 꼬리가 오똑 서 있다.
그리고 머리 위에는 삐쭉삐쭉 움찔거리는 고양이 귀가 이싿.

"머리색이 맟춤이다냐~~왜 이런 나라의 끄트머리에 있으신거냐냥?"

평소에는 고양이 귀의 메이드, 트레저 헌터일 때는 고양이 귀의 부하.
인간보다 후각이 뛰어난 캿티씨에게 냄새로 들켜버렸다.

흔히 반인반수로 불리는 일이 많지만, 수인족과는 전혀 다른 종족이다.
옳지 않는 호칭이다.
피부는 인간이지만, 동물의 귀와 꼬리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이나 성질을 가진 종족.
이름을 이월인(耳月人) 족이다.
캿티씨는 고양이 형태의 이월인.
신체 능력을 살려 일 하고 있다.

"로냐·가뷔제라양! 깨닫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랜만이네요……왜 이런 먼 거리의 찻집에……?"

그러자 하루토님이 일어서서 나에게 부지런하게 고개를 숙였다.
빨갛게 반짝이는 검은 머리는 울프컷에 움직이기 쉬운 재킷과 바지, 그리고 롱 부츠의 모습이다.

그리고 일동이 그 의문의 답을 기다린다.
남은 두 사람은 검은 머리를 길게 땋아 묶은 장신의 여성 밋슈씨와 굵은 근육질의 팔을 노출 오렌지색 머리를 세운 남성 리처드씨.

하루토님은 친구에게 재촉받아야 겨우 사교 파티에 얼굴을 내미는 분이다.
내 소문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곤란하게 웃어 보인다.

먼저 주문을 받고, 고기 가득한 샌드위치를 냈다.
그리고 네명이 앉은 테이블에 의자를 하나 나르고 이야기를 시작 한다.
슈나이더에게 파혼을 당하고 학원을 쫓겨나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다라고 밝힌다.
하루토님들은 놀라서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그런녀석따위! 슈나이더님과 그 녀석! 찢어발겨주겠다!"
"진정해요, 캿티씨"

화를 낸 것은 감정이 풍부한 캿티씨이다.
달래려고 해도 류세씨와 다른 색깔의 꼬리가 붕붕 좌우로 흔들릴 뿐이었다.

"이런 치트에 우수하고, 참한 아가씨인 로냐 아가씨를 어째서! 정말 바보 같은 남자입니다!!후샤!"
"또 이상한 말이나 하고……로냐 아가씨를 괴롭히지 마."


눈초리 세운 캿티씨를 주인 하루토님이 억누르고 조용히 한다.
지금 한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해 버렸지만, 하르트님이 진지한 시선을 돌렸던 것으로 귀를 기울였다.

"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저는 당신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힘도 방법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저는 귀족을 그만두고 싶었던 몸이라서 하루토님이 죄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웃으며 대답하자 그는 침묵했다.
그리고 곧바로 하루토님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상심 중에 노골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트레저 헌터,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번 과는 달리 보수를 제대로 지불하겠습니다"

눈을 반짝 빛내며 다가왔다.
이 분은 양친 모두 트레저 헌터인지라, 그 영향도 있어 트레저 헌트를 좋아한다.
엘리트 마법 학교를 졸업해도 별로 마법실력에 자신이 없는 이유도, 수업을 땡땡이치고 모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토님은 나의 마법실력을 원하는 것 같다.


지난번에는 나도 트레저 헌터의 모험을 경험하고 싶어, 마법의 힘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참가하였다.
한마디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는 무심코 하루토님의 오른쪽에 앉은 캿티씨에게 눈을 돌린다.
그녀는 알 수 없기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하지만 하르트와 밋슈씨와 리처드는 잘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캿티씨는 신체 능력으로 어떤 모험도 이겨내 왔지만, 한가지 큰 결점이 있다.
그녀는 파멸적일 만큼 맹하다.
그것도 생명의 위기에 노출되는 트랩을 발동시키는 것에 있어 천재적이라, 지난번 모험에 여러 차례 간담이 서늘했다.
마법으로 커버하고 회피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르트님이 노성을 날리면서도 모두 함께 생환했었지만, 아무래도 아직도 그녀의 위험한 맹함은 그대로 인 것 같다.

"네, 사양하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주세요!"

하루토님은 굴하지 않았다.
나의 마법이라면 안전하게 그녀의 맹함을 회피할 수 있어 편리하니말이다.
나는 그녀의 맹함이 무서워서 싫은데요.


말하는 동안에 식사를 끝낸 하르트님 일행은 앞으로 왕도로 돌아간다고 한다.
오래 앉아 있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당연하게 입막음을 부탁했다.

"로냐 아가씨"

문까지 배웅했을 때 캿티씨에게 손을 잡혔다.

"이제 아가씨가 아닌데요 "
"아가씨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냐!"

캿티씨가 그렇다면 별명인걸로 하자.

"로냐 아가씨는 여주인공이다냐. 그것도 굉장히 사랑 받는 여주인공이다냐! 그러니 해피 엔딩이 될 수 있다고 믿으시라냐! 최고의 마법입니다냥!"

매우 이상한 말을 했기에, 웃고 만다.
갈색의 눈동자로 바라보는 캿티씨는 만면의 웃음 그대로였다.

"미움받는 악역으로 쫓겨난 듯한 것이지만……네, 그렇네요. 행복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신이 불행한 삶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행복한 시간을 더해간다.
그렇게 믿고 나아간다.

"응, 항상 로냐 아가씨는 좋은 향기입니다."

기분좋은 빨간 고양이씨는 주인님과 같이 돌아갔다.
저 사람들과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그렇게 생각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나는 조용히 미소를 흘렸다.



딸랑딸랑.
또 새 손님이 왔다.

"엄마의 케이크. 하나 쥬세요."

다섯살 정도의 작은 소년이 심부름 온 것 같다.
아무래도 엄마의 생일 케이크인 듯 하다.
확실히 예약되어 있는 생일 케이크가 있었다.
그것일 것이다.

하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상냥하게 웃어 주었다.

"네, 지금 드리겠습니다."

혼자 가져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적어도 계단 밑에서 건네주자.

그때, 딸랑 딸랑 하고 들려온 소리에 반응하고 혹시나 해서 보면 수인 용병단씨였다.

소년과 수인 용병단씨가 마주본다.

하필 오늘은 시제씨가 선두다.


까맣고 큰 사자님과 작은 소년.
굳어 버린 소년이 더욱 작게 보였다.
울지는 않을까?

뛰어갈까 했지만, 시제씨가 움직인다.
소년을 흘깃 보고는 관심이 없는 듯 지나쳐 간다.
그런가 했더니 검은 털이 달린 꼬리가 소년의 뺨을 어루만졌다.
소년은 움찔하고 떨었다.
시제씨는 모르는 체하고 평소의 자리에 앉았다.

다음으로 들어온 녹색의 자칼의 세나씨는 소년을 그대로 피할까 생각했지만, 복슬복슬한 꼬리로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 다음에 들어온 하얀 치타 류세씨는 무시하는 듯한 태도인데 꼬리만 소년의 배를 간질였다.

마지막 치세씨는 "으럇" 하며 뻣뻣한 꼬리로 소년의 머리를 매만졌다.

꼬리로 놀아진 소년은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셔츠를 양손에 쥐었다.
솔직히 부럽다.

수인 용병단씨는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인지 모두들 외면하고 있다.
그래도 류세씨의 긴 꼬리만이 소년을 향해 흔들리고 있었다.

"케이크, 기다리셨습니다. 계단 밑에서 드리겠습니다."


나는 수인 용병단에게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한마디 전하고 케이크 상자를 들고 가게를 나간다.
소년은 나의 앞치마에 매달렸지만, 용병단 여러분을 향해 작은 손을 흔들었다.
류세씨들은 손 대신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

아주 흐뭇하다.


소년과 함께 현관을 내려가 거기에서 상자를 건넨다.
소년은 뺨을 붉힌 채 잠자코 돈을 주고, 상자를 흔들지 않도록 조심스레 들고 돌아갔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킥킥 웃으면서 안으로 돌아왔다.
시제씨들은 13년 전 사건 이후 어린 아이들을 뒷바라지 했던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말 아이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된다.

"왜 웃고 있어 아가씨."
" 흐뭇하다-라고 생각해서요."
"……뭐야 그거 이상하게."

손으로 턱을 괸 류세씨는 머리를 감싸듯이 엎드렸다.
"왜 그러세요?"라고 들여다보려 해도 류세씨는 얼굴을 가릴 뿐이다.


"이상해, 점장의 머리"

치세씨의 가슴을 후벼파는 한마디.

"머리카락일 뿐이잖아, 바보 치세. 새빨간 머리로 이미지 체인지? 당돌하네, 왜 그런거야 아가씨."

류세씨가 겨우 얼굴을 들었다.

"어색한가요……? 호평받았는데"
"뭐 나는 평소의 아가씨가 좋다."
"우리 수인족은 털을 염색하는 습관은 없으니까"

류세씨는 불만스러워하고. 세나씨가 이어말한다.
"튄 피로 물들이는 것은 있지만.." 이라고 류세씨는 히죽거린다.

"어색해……단순히 익숙한 색의 너였으면 하는데, 안돼?"

세나씨는 곁눈질로 바라보며 묻는다.
어차피 내일이면 되돌릴 계획이었으니 지금 마법을 풀기로 했다.
새빨간 머리에 마력을 집중시킨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불에서 물로 변하도록 슬쩍 흘러내리면 스르륵 하고 머리가 어깨에 떨어진다.

"응 평소의 아가씨다, 귀여워."


류세씨는 씨익 하며 웃었다.
색을 바꿨을 뿐인데 수인 용병단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기분 탓일까.

"이리 와, 로냐. 내가 묶어 줄께"
"네? 스스로 할 수 있는데요 세나씨, 잘하시는 건가요?"
"뭐, 대충"

모처럼이니 세나씨에게 묶어달라기로 하고 옆 의자에 앉았다.
여자아이를 돌봐 준 경험이 있을까?

반쯤 묶은 머리를 빙글 돌려서 뒤로 짜넣는 것처럼 변형하며 순식간에 모아주었다.
만져서 확인해 보니 제대로 되었다.

복슬복슬한 손인데 너무 약삭빠르다.


"감사합니다"
"아니 괜찮아, 이 정도."


머리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묶은 후 나는 접객으로 돌아갔다.
평소의 음식을 나르고 나서야 위화감을 알게 된다.

후각이 좋을 수인 용병단씨가 가게에 왔던 이월인족 캿티씨의 냄새를 지적하지 않는다.
파악하는 기색도 없다.
좀 궁금하게 생각되지만 단순히 신경쓰지 않을 뿐일지도 모른다.


모험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았다.
때로는 즐거운 모험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게다가 수인 용병단들과 함께라면 즐겁 않을 리 없다.
언젠가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면 왠지 부끄러워졌기에 주방에 숨었다.
시제씨가 본 느낌 때문에 뺨을 누르고 붉게 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날 밤

마음을 편하게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전 영애라고 커밍 아웃을 하는 것을 완전히 잊어 버렸다!

악마의 등장으로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무심코 연속으로 실수한 자신이 부끄럽다.

그래, 내일이야말로.
그렇게 나 자신에게 타이르며 숨을 깊게 토하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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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길어

힘들다

몇시간이나 한거야...6~7시간은 걸린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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