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사막위의 돌고래 2018. 5. 19. 13:23

제2장 수인 용병단




31.책선물





마음을 가라앉히자고 생각하면서, 오늘 몇잔째인지 모를 라벤더 티를 마신다.
캡슐이 물에 녹으면 확 하고 터지듯 연한 보라색이 물든다.
작고 푸른 꽃이 셋.
그 작은 꽃이 찻잔 위로 피어오르면.
열이 퍼지는 잔을 양손으로 감싼다.
화려한 향기를 들이마시고, 꿀의 달콤함과 은은함을 삼켰다.
안심이 되는 아늑함이 느껴진다.

나를 영원히 그릴 것임을 결의했다고, 오르비아스님이 털어놓았다.
숨기려던 마음을 내게 전했던 오르비아스님은 어딘가 즐거운 모습이었다.



멀리서 세계를 보며 웃는 것 같은 미소.
하지만 별의 반짝임을 지닌 눈동자는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원한 짝사랑이라니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것이 어쩐지 부드럽게 감싸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기쁘게 생각되었다.



찻잔의 열과 같은 정도의 뜨거움이 뺨에 쏠리고 있다.
12시가 되기 전에 식히지 않으면 수인 용병단에게 지적되고 만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하얀 문에서 그가 뛰어들었다.

"로냐. 이 책 읽었어?"

녹색 자칼씨가 나에게 책을 내밀었다.
평소 냉정하며 점잖은 세나씨가 드물게 흥분했다.
머리 위의 큰 귀은 쫑긋쫑긋 하며 희미하게 흔들린다.
그 뒤에서는 털끄트머리에 볼륨이 훌륭한 꼬리가 휙휙 흔들린다.
잎사귀의 색으로 윤이 흐르는 털색이라 왠지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세나씨. 이건……아뇨, 읽은 적 없어요."

나는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하고 제목을 확인한다.
분명 어제 책방에 들러서 발견한 새로운 책일 것이다.
처음 보는 책이다.

"그래. 이거 읽어 봐"

그러면서 세나씨는 복슬복슬한 손으로 나에게 건네주었다.

세나씨의 행동으로 보아 상당히 재미있는 것 같다.


"세나씨가 그렇게 권유해 주실정도라면 저도 서점에서 사야겠네요."
" 괜찮아, 너에게 줄 선물로 샀어. 내 건 이쪽이야."

세나씨는 한권 더 뒤에 숨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 때문에 다시 책방에 들러서 이곳에 들어온 것 같다.

"읽어줬으면 해서 산거니까, 받아. 니가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세나씨. 읽겠습니다."

선물하려고 할 정도의 책과 만났다는 것인가.
흐뭇하다.
나는 솔직하게 받기로 했다.
언젠가 나도 세나에게 책을 선물을 할 수 있을까.

"뭔가 마시겠나요?"

세나씨가 12시 전에 혼자 왔다는 것은 그가 비번이라는 것이다.
다른 용병단은 나중에 온다.
자신의 컵을 치우려고 부엌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또 세나씨의 복슬복슬한 손이 잡아 세웠다.

"그런건 됐으니까 책 읽어."

빨리 읽으라며 재촉한다.

"어머, 안돼요, 세나씨. 주문을 해 주세요. 저는 라떼로 할껀데. 세나씨는요?"
"......나도, 라떼"
"네,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


세나씨에게는 얌전하게 카운터 자리에 앉았다.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으며 라테를 내린다.
평소에는 세나씨가 치세씨들을 얌전하게 만드는 편인데.
어쩐지 조금 귀여운 생각되었다.

"……"

다시 보면 세나씨가 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르비아스님이 앉아 있던 장소다.

킁킁 하며 숨을 들이키는 모습으로 보아 낯선 요정의 냄새를 맡는 것 같다.
하지만 새 책에 푹 빠져있는 세나씨가 물어보지 않았다.
라테를 받고서 내가 다 읽기를 기다린다.

나는 세나씨 옆에서 책을 펼쳤다.
그 동안 세나씨는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처음에는 신경쓰이는 시선이었지만, 글씨를 따라가게 되면서 안중에도 없게 되었다.
순식간에 한 화를 다 읽어 버렸다.
살짝 멍하니 있으면서 세나씨를 보았다.

"……정말 재미 있습니다"
"그렇지?"
"네"
"마음에 들었어?"
"네"

세나씨의 꼬리가 뒤에서 흔들린다.
기쁜 듯한 모습에 좀 더 감상을 하고 싶지만, 말이 막힌다.
마치 박력 넘치고 스릴 만점인 영화를 본 뒤 같은 흥분을 이 가슴에 느낀다.
아직 한 화 밖에 읽지 않았는데 말이다.

"1화만에 세계관으로 끌어들이면서 매료시키는 글이네요. 수수께끼를 밝히고 싶어져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정말 세나씨 취향의 작가이네요. 이름이 기억에 없는데, 새로운 작가인가요?"
"응, 그래"

세나씨는 작은 조각조각을 하나씩 모아 수수께끼를 밝히는 미스터리 소설을 선호하고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물건 이었다.

주인공은 여성.
처음에는 수수께끼의 아름다운 여성.
그녀는 누구일까? 라고 의문스럽게 생각하면서 읽어 나가면 조용한 밤의 일상이 공포스러운 전개가 되어 다가온다.
지하 통로에서의 살육이다.
항간에 유명한 살인마의 정체는 흡혈귀인 주인공.
그러나 주인공이 손을 뻗치는 상대도 또한 흡혈귀였다.
인간 속에 섞여 흡혈귀들을 사냥하고 있는 아름다운 주인공.

"설정도 색달라서 좋네요."

이 세계에는 흡혈귀가 있다.
밤에 나타나는 괴물들을 일괄적으로 묶어 마물이라 부른다.
일명 , 마(魔).

사람이 주식인 마물은 적지 않다.
흡혈귀는 인간의 생피를 요구하는 마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인간과 너무도 비슷한 모습을 지녔다.
이 책의 설정은 흡사하지만, 액막이가 되는 마늘이 있는 나라 안에는 잠복할 수 없다.
마물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세계에서는 참신하다.

어둑어둑하고 축축하며 질척한 지역을 좋아하고, 나라에 눌러앉는 경우는 우선 없다고들 말한다.
악마가 만들어낸 생물이라고 불리던 과거도 있고, 악마의 마력에 조종당하기 쉽다.
하지만 결코 악마의 종이 아니다.

정령의 숲의 습격에서 악마에게 조종당한 마물들 대신 마물들의 정점에 있는 왕이 오리페도트에게 용서를 구하러 왔었다고 들었다.
누구나 정령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 악마 외에는.

전생의 세계로 말하면, 마왕.
그렇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애초에 나라 라기보다는 그 마왕의 힘 아래로 피신한 마물들이 상주하게 되어 왕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악마에게 조종당하기 쉬운 마물들의 대부분은 그 마왕의 보호 하에 놓이게 된 것 같다.
그 덕분에 두번째 습격은 없었다.


"……그래도 취향을 탈 것 같네요 "

누구나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다.
주인공의 설정도 흡혈귀 사냥이란 내용도 한마디로 살육.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유감이지만, 히트작이 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 그렇구나. 어두운 내용의 책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서점 구석으로 몰릴 테니까. 작가가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히트작이 되면 활력도 넘치게 될 것이고 더 재미 있는 걸 적어 줄꺼라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로냐의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저는 이 정도면 괜찮아요. 뭐, 아직 한 화 밖에 읽지 않지만요.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나씨."

스릴 만점인 이 작품은 마음에 들었다.
아직 한 화 이지만.
세나씨가 미소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
심록 색의 눈동자 속에 반짝이는 금은 없지만 즐거움의 빛이 보였다.
친구와 함께 마음에 드는 책에 대해 이야기해서 기쁜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다음 화도 읽어. 더 빠져들 거야."

또 재촉을 받아, 책장을 넘긴다.
무릎 위에 세나씨의 꼬리가 툭 하고 갑자기 올라왔다.
아무래도 수인족은 친밀감을 느끼면 장난을 치고 싶어 지는 듯 하다.
친밀감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이고 기꺼이 쓰다듬으며 읽어 주셨다.

세나씨의 털은 손질이 잘 되어있어 감촉은 최고다.
푸른 잔디 같지만 아주 매끈하게 녹아 버릴것만 같다.
두 번째 화에는 살인마를 쫓는 자경단의 남자와 만난다.
주인공이 흡혈귀 사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유를 물었다.
그런 2화를 막 읽은 시점에, 딸랑딸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서 오세요"


류세씨들이다.
자리에서 일어서면 세나씨의 꼬리는 스르륵 하고 미끌어져 떨어졌다.
기분 탓인지, 세나씨가 아쉬워해 하는 듯 했다.
저는 일이 있으므로, 죄송합니다.

류세씨가 새하얀 털에 덮인 얼굴을 언짢은 듯 찌푸리고 있었다.
왜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테이블을 가볍게 닦는다.
세나씨는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운터 테이블과 안쪽의 테이블뿐이다.
치세씨도 시제씨도 앉았다.
빨리 그 다음 부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머리 한 구석에서 하면서도 주문을 받았다.
나도 점심으로 아보카토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함께 느긋한 점심 시간을 보낸 뒤, 책을 펼쳐 3화를 읽으려 했다.
그러자 왼쪽 옆의 세나씨는 또 꼬리를 무릎 위에 얹었다.
또 다시 쓰다듬으며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최고의 느긋한 찻집 라이프다.


희희낙락하게 녹색 복슬복슬을 쓰다듬으려 했을 때.
새하얀 꼬리가 막아 손바닥을 끌어올렸다.

물론 이 흰 꼬리의 주인은 오른쪽의 류세씨.
다시 한번 녹색 복슬복슬울 잡으려 했지만 또 다시 갑자기 막혔다.

어느 쪽에 닿아도
복슬복슬하다!

세나씨는 류세씨의 꼬리를 보고 황당한 시선을 보낸다.

"독서를 방해하지 마라, 류세"

그렇게 말한 세나씨는 내 어깨에 턱을 올렸다.
이어서 뺨을 스윽스윽 부빈다.
뺨의 복슬복슬함을 느낀 나는 경직되고, 류세씨는 부들부들 떨었다.

"읽는데 방해 안 해!"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면서 류세씨가 손을 뻗는다.
세나씨는 가볍게 피한다.
나는 조용히 힘을 뺐다.

세나씨가 장난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금까지 익숙하지 못한 나에 신경을 쓰고 있었으므로, 이 대담한 부비적부비적은 오래간만이다.

평상심, 평상심, 평상심.

어떤 때 라도 침착해야 한다.

"아가씨, 오늘 엘프 왔다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있자 류세씨가 물어봐 다시 마음이 흐트러 졌다.

평상심, 평상심, 평상심.


"아……그러고보니 그랬었지, 엘프가 이 가게에 왔다고"
"정보가 빠르네요……"


세나씨도 기억을 떠올리며, 스읍스읍 하며 콧소리를 낸다.
어디에서 정보를 얻은 것일까.
분명 거리의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들은 걸까?
청각이 뛰어나니 말이다.

"엘프의 왕국에서 왔나? 여기서 가장 가까운 것은 가라시아 왕국이구나."

역시 아는 것이 많은 세나씨는 오르비아스님의 정체를 알아차려 버릴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는 어찌되든 상관없어."

카운터 테이블에 턱을 얹으며 류세씨는 슬렁슬렁 꼬리를 흔든다.
나에게 향하는 곁눈질은 먹이를 노리는 듯한 강렬한 인상으로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아가씨를 노리는 손님인거 아냐?"

누구인가요, 그런 소문 낸 것은.

"뭐야, 외출 권유라도 받은 거야? 점장"

우물거리는 치세씨도 대화에 가담했다.
권유 뿐만 아니라 청혼을 하셨어요, 라고 말할 수 없다.

"아가씨~? 왜 얼굴이 굳어지는 거야?"

류세씨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미소를 더한다.

"성가신 것은 무엇 하나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류세씨는 공격을 피는 듯이 홱 하고 몸을 틀었다.
그러며 "그런가" 하고 짧게 끊었다.


"그렇지만 끈질기면- 쫒아내 줄까?"
"여행자였지? 그럼 이제 오지 않을 거야."

혈기 왕성한 치세씨를 말리듯 세나씨가 기회는 없다며 예상을 말한다.
단골 손님이 되려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일부러 말하지 않는 편이 보신을 위해서라며 덮어 놓았다.

"...점장."

시제씨가 커피를 원했다.
곧 가져가서 가만히 검은 사자씨를 올려다보았다.
그 밖에 주문이 있을까 싶어 "퐁당 초콜렛, 드시나요?" 라고 확인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치세씨도 먹고싶다는 눈길을 보내고 있어 물어보면,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끄덕였기에, 두 개를 가져왔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려 하자 시제씨의 손에 붙잡혔다.
가볍게 잡혔을 뿐이지만 털썩 하고 시제씨 옆에 앉아 버리게 되었다.


"칵테일 만들기는 어떻게 되었나?"

전에, 술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하고, 대신 내가 만들어 여기서 먹게 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도 초콜릿 칵테일.

"여유 있는 밤에 여러가지 시험하고 있습니다. 아직 납득 안 되어서……"
"시험 삼아 마시게 해줘."
"아뇨, 시제씨들에게는 완성된 것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초콜릿 칵테일 외에도 연습 중이다.
단호하게 대답을 들려주면 시제씨가 눈을 가늘게 떴다.
새까만 얼굴 속에 있던 날카로운 눈빛이 사라져 갔다.


"손님으로서 술을 마실 생각이 아니야."

그리고는 살짝 못 박아 두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 알고 있습니다. 저는 맛있는 것을 드리고 싶은 거에요."
"……너무 기다리게 하지마라."

굴하지 않고 전하면 시제씨는 기다리기로 했다.
세나씨도 함께 쇼트 케이크를 부탁했기에 준비를 하고 날랐다.

"뭐야, 아가씨 술 마실 수 있어? 약할 것 같은데"

류세씨는 히죽이죽 웃기 시작했다.
나는 파티에서 와인을 즐기는 정도다.
이 세계에서는 좀 더 마셔도 좋을 나이이다.

" 독한 술은 마신 적 없고, 많이 마신 적도 없으니 모르겠어요. "
" 독한 술은……인가. 술에 강한 것도 약한 것도 필요 없잖아. 먹는다, 취한다, 두가지인 거니까"

쇼트 케이크를 찌르는 세나씨 옆에서 독서를 재개하자 또 녹색 꼬리가 얹어진다.
어루만진다면 다시 흰 꼬리가 막아섰다.
류세씨는 정말 장난 꾸러기다.

소설이 너무 재미 있었기에 그리 신경쓰지 않고 집중하며 읽어 나갔다.
세나씨도 같은 듯 했다.

복수를 위해 사냥을 하는 아름다운 주인공과 사람을 지키고 싶은 자경단의 청년이 협력하게 되었다.
또 다음 화가 읽고 싶어서 어쩔 수 없게 되어 세나씨에게 말했다.

"또 목욕탕에서 읽고 쓰러지지 말라구."

이전, 세나씨에게 책을 빌렸을 때, 너무 빠져서 장시간 목욕을 하게 되어 컨디션을 무너뜨렸었던 것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잔소리는 아니었고 재밌다는 듯이 세나씨가 웃고 있었다.
수인 용병단을 배웅한 다음에도 소설을 읽었다.
청소를 도우러 온 로트들을 깨닫고는 책을 덮었다.
할 일은 확실히 해야한다.

" 맞아. 오늘 오르비아스님이 가게에 오셔서 새로운 홍차를 칭찬하셨어요."

오르비아스님도 칭찬했다고 보고한다.
영웅님께 칭찬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로트들은 페리도트의 눈동자를 깜박였다.
후와악 하고 뺨을 들어올리며 미소지었다.

" 다른 손님도 기뻐하셨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하고 인사를 하며 정중하게 전하자 로트들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즐겁게 청소를 계속하는 로트들을 바라보았다.
생각하는 것은 오르비아스님.
그 말과 미소를 떠올리면, 볼이 붉게 뜨거워진다.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점포 정리 작업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겸허한 망토를 몸에 걸친 오르비아스님이 방문했다.
오르비아스님이 오자 마자 또 가게 안은 고요해 졌다.
공포가 아닌 경악과 황홀이다.


"커피를 하나"


그러면서 카운터 자리에 앉았다.
오늘 옆에는 세레나씨가 있다.
두번째 초콜릿 케이크를 맛 보고 먹으면서 세리나씨도 곁눈질로 주목한다.
세리나씨는 원래 적극적으로 누군가와 말도 없으니 오르비아스님에게 말을 거는 일도 없다.

오르비아스님도 한번 본 것 외에는 세레나씨에게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가게안에는 침묵이 감돈다.

쓴웃음을 지었다.


"또 방문을 감사합니다.……음, 뭐라고 부르면될까요?"

다른 손님의 본보기로 대신 내가 말을 걸어 보자.
섣불리 말을 걸지는 못하겠지만, 여기에서의 호칭만을 확인해 보았다.

"……비아스, 라고 불러줘."

턱에 손을 기대다가 오르비아스님이 그렇게 답했다.
그것은 몇번인가 루나테오라님에게 들은 오르비아스님의 애칭.
여기서 애칭을 불러달라는 건가요…….

"그럼, 비아스, 니……"

님 이라고 말 할 뻔했다.
여기서는 씨를 붙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오르비아스님은 몰래 오고 있으니까.

"……아, 그것으로 좋다. 로냐 점장."

오르비아스님은 웃는 듯이 한쪽 입가를 올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제의 고백을 떠올리게 되어 얼굴이 뜨거워져 버리게 된다.

평상심, 평상심, 평상심.

주문처럼 외치며 미소를 돌려준다.

나에 이어 이야기하는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르비아스님도 커피를 마시는 것이 끝나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 계산했다.

"다시 온다"라는 한마디 남기고 가게를 나갔다.


"점장니이이임! 용사다!"
"저런 엘프에게도 말을 걸다니, 역시 수인 용병단도 받아들이는 점장입니다."

샐리씨가 부들부들 떨고, 레인씨는 담담하다.

손님을 받아 접객하고 있을 뿐 용사는 아니다.
오르비아스님의 정체를 알면 어떤 반응이 될지, 그렇게 생각 하면 쓴웃음이 저절로 지어진다.

"점장씨. 혹시, 매일 그 엘프, 오는거야~?"

초콜릿 케이크를 다 먹은 세레나씨가 묻는다.

"글쎄요.  마음에 들어 하신 것 같아서 단골이 되어 줄 것 같아요. "

그렇게 대답하자 "흐응" 하고 맞장구를 치고는, 세레나씨도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떠나갔다.
"그렇다는 건 마법으로 오는 걸까" 하며 샐리씨는 소곤소곤 레인씨들과 이야기 한다.

별일 없이 오전이 지나고 점심도 끝냈다.
수인 용병단씨가 올 때까지 읽기 위해 카운터 안에서 책을 펼친다.

하지만 곧 딸랑딸랑 하고 조용히 종소리가 울렸다.
처음 온 손님이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놀란다.
놀란 이유는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심록색에 윤이 나는 머리는 어깨까지 드리워졌다.
그걸 노란 줄이 들어있는 녹색 리본으로 묶고 있는데, 조금 머리가 어수선했다.
얼굴이 갸름 하면서 단정한 얼굴을 한 남자는 사십대 전후로 보였다.
대범한 성격을 드러내는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도 눈 밑에는 희미하게 다크서클이 일고 있다.
그 눈도 졸린 듯이 금방 닫혀 버릴 것만 같다.
스트라이프 무늬 셔츠에 넥타이를 맨 정장과 조끼도 입고 있다.
그리고 그 옷에 붙은 금 장식으로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봄의 코트가 조금 낡아있다.
가죽의 검은 구두도 더러움이 묻은 채다.

실례지만, 그림 같은 가난한 귀족 같은 남자다.
아마, 이 도시의 영주, 남작일 것이다.


"……어서 오세요"


책을 덮어 웃으며 인사를 한다.


"아. 소문으로 들었다만, 네가 내린 커피를 마시면 일이 잘 진척된다고 하더군. 아, 나는 오스카리・리스. 이렇게 보여도 일단 남작이야."

스스로 엉망인 모습이라며 리스 남작이 자칭했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악수로 손을 내밀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리스 남작의 손은 서류 더미가 있어서 무리다.
리스 남작은 지친 미소로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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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슬복슬
부비적부비적
복슬복슬

복 ! 슬 ! 복 ! 슬 !





엘프 휙
 


영주!

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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