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31. 10:39
새벽녘
시작은 얼마 전의 어느 날부터였다.
오랜만에 친구가 부른 것이다.
일 중에 짬을 내 성의 한쪽에 있는 작은 방에서 나의 친구, 리카르도를 만나기로 했다.
약간 수척해지고 가늘어진 리카르도를 본 나는 뭔가 몸이라도 나쁘냐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래.감기라도 걸린 거야?"
"괜찮다. 무슨 병에도 걸리지 않았어."
나의 말을 일축한 리카르도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보다 그레이엄. 부탁이 있다."
부탁한다.
이렇게 진지한 어조로 그에게 그 단어를 들어봤던 적이 일찍이 있었을까.
리카르도는 지금까지 나나 극히 가까운 사람에게 의존하기 전에 모두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을 했다.
그렇지만, 오래 전부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힘이 되어 주겠노라고 했었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생각을 정리하고 리카르도를 마주 보면, 그도 그것을 미루어 준 듯 깊이 숨을 토했다.
"만났으면 사람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만나기 위한 장을 준비해 줬으면 한다."
그때서야 그의 거동을 이상하게 만들던 예의 그 남자의 존재가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드디어 리카르도가 진심으로 그 남자와 함께 인생을 걷고자 결심을 했고, 그래서 준비를 하고 있는건가 하고 상상을 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그는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사이를 급속히 좁히고 있다.
미움을 받고 있을 터인 아버지에게 자신을 인정하게 할 정도로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뼈를 깎는 수준으로 일하고 있는게 눈에 선하다.
수척해진 것도 아마 그 때문이리라.
그렇게 짐작한 나는 그를 거기까지 하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상 없을 만큼 호기심을 자극 받은 나는 몸을 내밀듯이 하며 물어봤다.
"누구야?"
"누구 라는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구태여 말한다면 , 이라는 이어진 말에 전혀 방향이 다른 사태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주인"
놀라움과 불안이 내 가슴속에 솟아나 증식한다.
리카르도는 주인 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관장하는 것.
우리 기사에게 있어 친밀하고, 그렇기에 가장 먼, 소중한 것.
그 사람이 검다고 하면 흰색도 검은색이 되고 아니라면 물들인다.
그것이 기사에게 있어 주인이라는 존재이다.
어울리는 그릇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인의 파멸에 기사까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리카르도가 고른 존재는 과연 어느 쪽일까.
나는 이 남자에 걸맞는 기량을 가진 인간이 나타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고상한 그의 위에 서는 사람은 있을 리 없다고 의심 할 것도 없이 믿고 있었다.
충격적인 이야기에 머리를 안고 싶은 나에게, 리카르도는 말을 고르는 일을 마쳤는지, 조용히 한층 더 강한 충격을 주었다.
"나의 주인은 영웅으로 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영웅이라고!?"
바보자식, 이 바보같은 놈.
왜 하필 그런 상대를 선택한거냐!
나도 모르게 의자를 쓰러뜨릴 기세로 일어섰다.
입까지 나오려던 욕을 간신히 삼킨다.
이 시기에 영웅이라면, 짚이는 인물 따윈 하나밖에 없다.
헤다리온의 영웅.
지금 군 안에서 그 소문을 못 들은 날이 없으며, 나라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당사자이다.
그 옆에 선다면 리카르도는 얼마나 고통을 받을 것인가.
쉽게 상상이 간다.
어떻게든 리카르도가 재고 할 수 있도록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왜, 어째서 그, 그 사람 인거야?"
말을 잡고 늘어지듯 질문한 나에게 곤란한 얼굴을 하고 매우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정해진 운명이었다고 믿는 모양이다.
목소리에 흔들림은 없다.
순간 속은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했지만, 리카르도가 그 정도를 알아채지 못할 리도 없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것인가. 은혜라도 느꼈다던가."
"확실히 도움을 받긴 했다. 그렇지만 은혜만으로 충성을 맹세할 만큼 가볍지 않다."
이것 저것 그에게 진의를 묻는 말은 떠올랐지만, 그의 대답을 듣기 전에 알게 되었다.
오랜 교제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 어떤 말을 해도 변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힘 없이 의자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파티가 좋겠다. 에이가벨가의 이름을 사용한, 성대한 파티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어떤 부탁이라도 협력할 생각이었다.
지금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 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이 친구를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존경하며 경애하는 것이다.
폐하께 직접 하사된 자랑스러운 검과 다름없을 정도로 나에게 유일무이의 보물이다.
그 보물을 훔쳐간 도둑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걸까?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은?"
"하루카 그라크님이다."
"그라크전은 강한가?"
"그래, 눈을 앗아갈 정도로."
"인격자인가"
그 사람에 대해 답하면서 리카르도 눈은 발랄하게 빛난다.
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렇게 망설임이 없는 목소리로 단언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에게 그렇게 평가되는 사람이 샘났다.
하지만 경애의 마음만으로도 사람은 이렇게까지 황홀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일까.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신자처럼, 혹은...연정에 몸을 불태우는 남자 처럼.
무서운 가정에 몸을 작게 떨었다.
만약
만약에 후자라면
리카르도는 어떻게 할 것일까.
동성의 주인에게 무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속마음을 자세히 밝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계속해서 가슴속에 통증을 안으며 함께 지내게 된다.
나는 흐린 날씨 같은 어두운 미래를 생각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세한 생각은 멈추었다.
이 추측은 확정적인 것이 아니니 말이다.
"준비할게. 니가 원하는 그대로. 흠잡을 것도 없이 완벽하게."
리카르도가 그라크님을 흠모하든 말든 어떻든 나는 그 사람에게 완전함을 요구할 것이다.
리카르도를 가졌음에도 완벽하지 않다면,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언질을 받아 긴장을 멈춘 리카르도가 떠나간 뒤에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늘,
수 많은 사람 속에서 낯선 그라크전이 처음 자기소개를 했을 때 눈치 챈 조그마한 손 떨림조차
나는 용서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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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미소년을 질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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