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사막위의 돌고래 2018. 2. 17. 15:16

새벽녘




제13화



얼굴 상반부에 찬물로 짠 천을 덮어 불쾌함을 덜어 낸다.


나는 의자를 나란히 놓아 만든 받침대 위에 누웠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대신, 귀에서는 술기운을 띤 술집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마리, 재난이었다면서"

"정말 그렇다니까! 최근 눈이 기분 나쁘니까 조심하고 있었는데"

"조이 그 놈도 바보같은 짓을 했구만. 이번엔 용서할 수 없겠는걸 "

"보이면 원수를 갚아 줄게"

"이제 괜찮아요, 바슈씨. 마술사님께 도움을 받았거든요."


단골 손님과 도와줬던 그녀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이야기의 화살이 이쪽을 향해 왔다.

아무래도 그녀는 마리라는 이름 같다.


"마술사님! 우리의 간판 아가씨를 구해줘서 고마워!"

"작은데 굉장히구나, 너"


얼굴에 올린 천을 떼어내며 시선을 돌리면 술에 취한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들이 보인다.

작은 가게이면서도 현지인에게 사랑 받는 모습에 이상하게 정겨운 분위기를 느꼈다.


"아뇨아뇨, 그만한 일도 아닌걸요 "


그만 버릇처럼 겸손해 하자, 마리씨의 아버지인 무서운 얼굴의 가게 주인이 조용히 부인했다.


"하지만 당신 덕분에 마리는 무사했다. 미안하네. 원래라면 술 한잔이라도 사야 하는데, 그러나 그 몸이라면 더 악화시켜 버릴 테니.."

"...그럼 다음에 뭔가 맛있는 것도 먹으러 올 테니까요. 그 때에 부탁하겠습니다"

"음, 확실히.... 알겠다. 그때에는 배불리 먹게 해 주지."

"주인장이 그런 말을 하다니 희한하네. 마술사씨, 언제나 이렇다고 착각하면 안된다구."

"뭐라고? 어이, 이제부터 너만 할증 요금이다."

"그건 심하네!"


대화가 자연스럽게 빗나가고 있어서 나는 다시 천을 얼굴에 올려 시야를 닫았다.

아직 몸 상태는 회복되지 않았다.

위장 근처에 남은 기분 나쁨을 견뎌내며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귀만 열어 주변의 대화를 주워들었다.


어느 누구의 아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왔다던가, 어떤 물건의 가격이 올랐다던가,

사람이 늘어서 문제가 일어었다던가, 언제 이웃나라와의 긴장이 고조될지 모른다던가, 등등 일상 얘기도 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그 전쟁의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자국 군이 멋지게 적국을 물리쳐 철수시킨 것으로, 흐린 날씨같은 분위기를 가지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밝은 기운이 존재하고 있다.


이제 더욱 좋아질 것이다.

모두 그렇게 믿었다.




종군을 했던 나는 이 나라의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된 일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싸운 보람, 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신이 일으킨 결과가 누군가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일은 순수하게 반가웠다.

그대로 듣다 보면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익숙한 단어를 말했다.


"그거 들었어? 헤다리온의 영웅 이야기 "

"...아, 그러고 보니 옆집 아들이 말했었지"


헤다리온 수해는 자신이 싸우던 장소의 이름이다.

그러나 영웅이란 용감한 사람을 말한다.

상관들 중에는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친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 중 하나일 것이리라.


"나는 모르겠는데. 누구야 그거."

"뭐라더라, 그 헤다리온 수해의 전투에서 적병을 닥치는 대로 격파한 강자라고 하던데. 소문에는 그 사람을 두려워해서 헤리오트도 이쪽에 손을 댈 수 없게 된 것 같고."


누구인 것일다.

해당할 법한 몇몇 인물을 떠올리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까지 화자될 정도는 아니다.


싸움이 수습되고 안정된 지금에야 무명이었던 사람의 업적이 인정 받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가 몰랐을 뿐일까.


혼자서 실력이 대단한 용병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 용병을 영웅으로 추대하지 않을 것이다.


"격파했다고? 나는 마술로 하늘을 빨갛게 물들인다고 들었다구. 적병의 피와 불로 말이지."

"내 들은 이야기로는, 대검을 가진 인물이라고 들었어. 마법 검사로 만이 넘는 시체의 산을 쌓은 인물이라던데."

"아니 좀 기다려봐. 전술로 헤리오트를 농락한 군사가 아닌거야?"


상당히 정보가 엇갈리고 있었다.

정보의 전달이 소문 밖에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흐트러져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너무 의견이 엇갈려서, 마지막에는 그들이 서로 어느 쪽이 진실성이 있는지 겨루기 시작했다.


이상한 것은 두 사람 정도인데,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의 의견도 달랐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몇 명의 [영웅]이 존재하고 잘못전달되면서 한명의 인물로 바뀌어 버린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무난한 생각이라고 나도 속으로 동의했다.


그들의 의견을 흥미 깊게 듣는 동안 창문에서 엿이는 하늘이 점차 가려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몸도 꽤 상태가 좋아지고 있고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집 분들에게 걱정을 시키고 만다.

나는 의자의 받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고 얼굴에 덮었던 천을 가게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이제 괜찮은가?"

"네.어두워졌기 때문에 슬슬 가볼까합니다"

"그런가...나는 토마스. 마술사님의 이름을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이름도 말하지 않았었다.

이름도 알리지 않고 떠나려 했었으니, 새삼스럽지만 자기 소개를 한다.


"저는 하루카라고 합니다"

"하루카씨. 다시 가게로 와줘."

"꼭 올께요."

"하루카씨, 안녕!"

"네"


나는 토마스씨와 단골 손님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문에 달린 종을 울리며 밖으로 나온다.

기분 좋은 가게였으니 또 기회가 있으면 놀러 와야겠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추워진 저녁 시내를 혼자 걷기 시작했다.



"예의바른 소년이었지"

"그래, 부모의 교육이 좋겠지."



하루카가 떠난 문을 바라보며 손님들이 그런 감상을 말한다.


그러다 토마스는 딸 마리의 모습이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쟁반을 든 채 시선을 아래로 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어이 마리. 왜 그래?"

"네? 아...아니, 아무것도 아냐. 틀림없이 기분 탓이니까"

"음?"


딸은 혼자서 자기 완결된 것 같으니, 토마스도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절망적인 우리를 구해 준 것은 천지를 쓸어버릴 듯한 거대한 섬광.

궁지에 몰려서 다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보인 그 경이로운 힘.

그 뒤에도 힘이 다할 때까지 병자를 치유한 고결한 인물은

...단 한명의, 소년으로 보이는 마술사였다.



마리는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바꾸었다.

그 전쟁터에 관한 이야기는 왠지 모두가 여러가지 일을 말했다.


그러니 분명 이것도 그런 소문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더구나 그 당사자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얼마나 낮은 확률인가.


그럴 리 없다고 자신을 납득시키고 마리는 그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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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가면


미소년을 애타게 기다리는 미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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