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사막위의 돌고래 2018. 2. 17. 15:14


새벽녘



제11화*




왕성의 한 구석에 있는 긴 복도를 씩씩하게 걷는 동년배의 모습이 보였다.

어깨로 바람을 가르는 그 모습은 바쁨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항상 그 상태인 것을 알고 있으니, 나는 굳이 말을 걸었다.


"어이, 리카르도"

"..그레이엄?"


걷는 속도를 떨어뜨린 리카르도의 옆에 나도 나란히 걷는다.

그가 조금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너의 변화가 좀 신경쓰여서. 번거롭게 돌려말하기 귀찮네. 무슨 일이 있었지?"


전쟁터에서 돌아온 지 벌써 한참이 지났다.

나는 수도의 경호였지만, 그가 간 전선은 상당한 격전을 치렀던 것 같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다.

상당히 가혹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지금까지의 리카르도와는 다른 행동이 자주 보이게 됐다.

일 이외에도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그 눈에 띄는 외모를 잘 이용해 교제를 하게 됐다.


아는 사람은 적지만 그가 인간혐오증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보인 이 변화는 정말 극적이다.


사교성을 갖췄다는 한마디로 정리되어 버리지만, 나는 뭔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심 같은 강한 감정을.


"뭔가 했더니 그런일인가. 누구나 자신을 바로잡는 기회는 있을텐데."

"그래, 그거야"


나는 리카르도의 그 말에 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옛날의 너라면 『 너에게 말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 라고 일축했을 거라구."

"그러니까 뭐야"

"그 이유가 궁금하다"


혀를 차는 것 같은 씁쓸한 표정과 함께 노려본다.


지금의 얼굴조차 예전에는 보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을까.


처음 리카르도를 본 것은 자신들이 기사를 지향하는 종기사로 일하던 때의 일이다.

늠름한 자세와 다부진 눈매.

전체적으로 차가운 인상을 주는 소년이었다.


그 때부터 눈길을 끄는 외모이었기에 겉으로는 시기하는 한편, 많은 사람이 매료됐다.

당시의 나도 그 일원이다.


귀족적인 외모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그 시선에 동경의 감정을 안았다.

대부분은 그와 친구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그냥 끝난다.

그러나 어느 선을 넘어 접근하는 자는 곧 알게 된다.

그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흐릿하게 보일 듯 말 듯 안개처럼 사라지는 인간이라고.


후원은 거의 없었지만, 그런 상황을 뛰어넘는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검술실력도 판단능력도 통찰력도 사람을 보는 눈도 있는 주제에 전혀 그것을 활용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활용하기를 주위에서 원하지 않았다.

그가 평민이라면 그래도 평온하게 살 수 있었겠지만 상류 계급 사회에서는 무너질 뿐이다.


아름다울 뿐 생명이 없는 그림 같다고 생각했다.

이게 뭔가.

그 무기력한 모습은 마치 눈이 먼 것과 같았다.

시들기 시작한 꽃이 물을 받은 것 같이, 질긴 생명력만이 충만했다.


"죽음을 가까이 느끼면 누구나 심경의 변화가 있다.그런 것일까?"


진실로도 거짓으로도 들리는 갈피가 잡히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렇지만 감이 맞다면 중요한 부분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카르도는  입가를 올렸을 뿐인 웃음을 만든다.

무의식 중에 신음소리가 나와버려, 자신의 패배를 느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의 미소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약한 것이다.

탐미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상의 존재에 대한 주눅이었다.


리카르도 또한 더 이상 무엇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이대로 물러설까?

그렇게 생각한 때였다.


"리카르도님!"


옆에 있는 남자의 이름을 누군가가 불렀다.

목소리의 방향을 바라보면 안색이 나쁜 상태로 뛰어 들어 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구스타인가,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리카르도의 사용인인가 보다.

구스타라고 불린 그 남자는 바로 앞 와서 멈춘다. 

가쁜 숨도 고르지 않은 채, 그대로 리카르도에게 무엇인가 귓속말을 했다.


어지간히 급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옆에 서 있는 나에게 인사도 없었으니, 그의 마음 상태가 엿보인다.

가족 소식이라도 있는 걸까 하며 여러가지 추측해 본다.


그리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리카르도가 심하게 동요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불안하게 눈을 헤매고 원래 하얗던 피부가 푸르르게 보이기 까지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 남자가 이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에 절망했던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뭘 하고 있었던건가."

"방 옆에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어디.."

"모르겠습니다"


드문 드문 들리는 대화로 봐서는 누군가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직접 찾아야 겠다."


그것은 번민이 담긴 작은 한마디였지만 확실히 들렸다.

이 문제의 인물이야말로 리카르도를 바꾼 장본인이라고 직감이 속삭인다.

근거는 없다.


"간다."


달리려는 리카르도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 찾는 거면 나도 도울까?"


순간 그는 망설였지만 결국 그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필요 없다."


그리고 그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달려간다.

남겨진 하인이 황급히 뒤를 쫓았다.

폭풍이 지나간 후의 고요와 같은 적막 속에 혼자 남겨진 나는 실망의 한숨을 토한다.


"나는 신용이 없군."



일손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사람 찾기를 돕는 것을 거절당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너를 바꾼 사람이 궁금하다.

해를 끼치는 위한 것이 아니고 그저 지켜보기 위해서인데.

리카르도.

예나 지금이나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

본인은 믿지는 않겠지만.

가끔 보이는 맑은 수면 같은 투명한 마음을 나는 그 무엇보다 눈부시게 생각한다.


그런 일방적인 우애를 가슴 속 깊이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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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나는 노잼을 번역 한다.

독자는 하나도 없겠지만.

혹시 보고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나는 번역을 한다.



그런 무의미한 헛된 짓을 가슴 속 깊이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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