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사막위의 돌고래 2016. 12. 22. 19:28

나는 두번째 인생을 걷는다.




142.


(젠장……왜 저런 녀석이 이 북쪽 숙소에 눌러앉아 있는 거야……)


아벨은 거울을 보고 볼에 생긴 주근깨를 손가락으로 만지면서 마음 속으로 불평을 했다.

아벨은 견습 기사가 되면서 계속 같은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는 북쪽 숙소로 들어가자마자 히스를 빈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괴롭히면 된 소년 중 한명이었다.


그런 아벨의 견습 기사 생활은 잘 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히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무시하다가 히스와 다른 북쪽 숙소의 사람들이 친해지고 대신 아벨이  고립되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숙소에서 성적은 부진하고, 칼솜씨는 그대로고, 모의전에서는 가장 미운 상대인 히스에게 져버리기 까지 했다.


( 묘한 움직임을 하기 때문에 싸우기 힘든 거야! 정면으로 싸우면 내가 더 강한데....!)


더 마음에 안 드는 일은, 함께 히스를 괴롭히려 했던 , 자신의 친구였던 보얀까지 지금은 히스의 편인 것이다.


"너도 언제까지나 오기 부리지 말고 적당히 지내. 제대로 사과하니 용서해 줬고, 이야기해 보면 정말 좋은 녀석이었어. 그런 너와 함께 있으면 나 까지 부끄럽다."


그렇게 말하고 자신을 기막히다는 눈으로 본 보얀의 말을 떠올리는 아벨은 더욱 심기가 불편해 진다.


(왜 모두 저런 녀석을 받아들이는 거냐……! 원래 빈민가 출신인 주제에 기사를 지향하는 것이 이상하다구! 그 놈은 약삭빠르고 교활한고 비겁할 뿐이지 않은가. 게다가 작은 주제에 건방지다. 그런데도 골무스씨와 그 쿠인과 지내고. 조금 얼굴이 좋다고 시녀들과도 친해지다니....!)


신분은 평민이면서 남작가에 끝트머리에 인연이 맺힌 핏줄인 아벨은 , 평민보다 하찮은 빈민이 기사를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동경의 대상인 제18기사대에 들어가다니…….


시녀들도 그렇다.

히스를 추켜세우고, 싸웠다고 들었을 때는 고소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화해한 것 같다.

시녀 중에 조금 신경이 쓰였던 레비에나쨩도 히스와 친한 것이었다.

저런 놈의 어디가 좋은걸까.


견습 기사가 되어 빛나는 생활을 보낼 생각이었다.

모처럼 준결승까지 갔는데 ――― 그 전의 대전 상대는 복통으로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태였지만 ――― 견습 기사가 되어 장래의 엘리트 대열에 올라, 동료들 사이에서도 출세를 해서 언젠가는 제1 기사대가 되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는 혼자 낙오 일직선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히스의 탓이다.

저 녀석만 없다면 견습 기사 생활은 탄탄대로 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홀로, 북쪽 숙소를 할 일 없이 걷다 보면 히스가 다른 견습 기사들과 거리에 간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말았다.

히스는 북쪽 숙소의 사람들과 이리저리 놀러 가거나 하는데 반해, 아벨은 거의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았다.

히스가 있는 곳을 피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벨이 절로 원망스러운 눈을 돌리자, 히스와 눈이 맞았다.

그를 본 히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아벨. 지금부터 거리에 가는데, 아벨도 같이 가지 않을래?"


아벨은 얼굴을 붉히며 히스에게 소리 쳤다.


"누가 그런 것 갈까보냐!"


애당초 다른 사람과 놀러 가지 않는 것은 히스가 있는 탓이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같은 웃음으로 말을 걸어 오다니.

분명 미소를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을 우롱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

빈민 출신이라 성품이 비뚤어져 있을 것이다.

분명 그러기 마련이다.


화를 내며 방으로 돌아가려는 아벨의 등 뒤에서 다른 견습 기사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런 놈 그냥 둬. 권해도 어차피 안 오니깐"

"음, 그래도 정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 빌어먹을, 착한 척이나 하고, 사실은 나를 바보 취급 하고 있잖아!)


히스가 자신을 옹호하는 말이 나오자 아벨의 기분은 더욱 나빠졌다.




그런 아벨은 장기 휴가에 북쪽 숙소에 남는 조에 속했다.

집에 돌아가도  어머니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거나 동생들을 돌볼 뿐이다. 

기사대에서의 성적도 좋지 않아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 빌어먹을, 히스만 없으면……)


장기 휴가로 쿠인의 집에 간다고 하지, 그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다.

히스가 없어졌다고 해서 다른 숙소의 사람과 맞을 리 없는 아벨은 시간을 주체 못하고 왕궁 속을 걷고 있었다.


그때.


(저건.. 히스?)




정오 조금 전에 북쪽 숙소에서 나왔을 히스의 등을 발견했다.

게다가 막 서두르고 있는지 주위도 보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몸을 숨기는 수상한 움직임으로 성안의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갔다.


"뭐야, 저 녀석 몰래 움직이고...."


그렇게 중얼거린 아벨은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뭔가 비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빈민인 그 녀석이다, 

뭔가 남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일을 한 게 틀림 없다.

약점을 만들 기회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아벨은 곧바로 히스의 등을 쫓았다.

그러나 그것도 도중에 놓쳐 버렸다.


(제길, 날쌘 놈 같으니……)


아벨은 히스의 등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성안에 있지만 주위를 벽으로 둘러싼 작은 건물이었다.


(이건, 필님과 함께 나라에서 온 측비가 있다는 후궁?)


피라고 하는 필님과 혼동하기 쉬운 이름을 한 저 측비는 필님의 언니인 공주 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성격이 나쁘고 얼굴도 못생겨서, 여동생의 결혼 이야기에 끼어들려 한 탐욕스러운 여자라고 오스톨에 가끔 소문이 돌고 있다.

필님과는 조금도 닮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아벨은 필님을 한번 눈으로 본 적이 있었다.

필님이 프라세교의 의식에 참가했을 때이지만, 견습 기사이면서도 경비 임무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먼발치에서 밖에 못 봤지만 필님은 정말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이라 아벨은 한눈에 팬이 되어 버렸다.

그 임무에 참여한 것은 아벨에게 견습 기사 생활에서의 몇 없는 자랑거리이다.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깨닫는다.


(저것은 히스가 자주 사용하는!)


후궁의 벽에는 히스가 자주 쓰는 갈고리 밧줄이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왜 이런 것이....)


왜 히스가 이런 측비가 있는 건물의 벽을 오른 것인지, 아벨은 전혀 알 수 없었다.

터무니 없이 못생겼다는 소문이 있는 측비의 얼굴을 보러 간 것일까.

의문이 든 아벨은 그 밧줄을 올라 히스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보고 싶었다.

어쩌면 히스가 결정적인 나쁜 짓을 하는 순간을 볼지도 모른다.


줄을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은 순조로웠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으로 머뭇거리며 끈을 쥐고 벽을 찬 아벨은 그곳을 오른다.

그러나 점점 올라갈 때마다 상황이 바뀌어 갔다.

절반 이상을 올라갔다고 의식한 순간 왠지 다리가 벽에 잘 붙지 않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고, 밧줄을 손으로 제대로 쥘 수 없게 된다.

땀으로 미끄러져 아벨의 몸은 갑자기 흔들흔들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 위험....!)


내릴까 하다가 손이 떨리고 밧줄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혹시 내려 갈 때 풀려버리는 게 아닐까 ,  그런 무서운 예감이 머리를 스친다.

그렇게 생각했던게 나빴던 것일까, 갈고리가 잠깐 딸깍 하며 조금 움직였다.

등골에 소름이 돋는다.


손이 저절로 멈추어 버린 아벨이었으나 조금 강한 바람이 부는 순간 떨리는 손으로 필사적으로 밧줄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벌써 중심도 자세도 엉망이고 갈고리는 덜그덕 소리가 나기 시작해 언제 빠져서 땅에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손을 움직여 줄을 올랐지만, 지친 아벨은 흔들리는 밧줄에서 벗어나기위해 아무 생각 없이 기세 그대로 벽 위로 올라가 흔들거리다가 균형을 무너뜨려버렸다.


"우와, 우와아아아"


그리고 그렇게

발을 미끄러뜨리고는 벽 안쪽으로 떨어져 갔다.



-------------------


==============


엑스트라 A 처치 (+100)




쿠인이라고 예상하신 여러분



틀렸습니다.(풉)


==============

'나는 두번째 인생을 걷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번째 인생~150.  (3) 2016.12.23
~두번째 인생~148.  (2) 2016.12.22
~두번째 인생~147  (1) 2016.12.22
~두번째 인생~144.  (1) 2016.12.22
~두번째 인생~139.  (1) 2016.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