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사막위의 돌고래 2016. 12. 22. 19:33

나는 두번째 인생을 걷는다



148


참가할 예정이었던 다과회에 나갈 수 없게 되자, 피와 아벨은 기운이 빠진 리넷트를 위로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피(와 아벨)의 격려도 있어서 그런지 원기를 되찾고 리넷트의 휴일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일에 복귀하였다.

아벨도 발 부상이 나아 후궁을 나갔다.

이것으로 만사오케이.

피도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지만.


피는 8일째가 되어도 후궁에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피님, 놀러 왔습니다!"


점심쯤, 보초들이 없어져 있을 시간.

찾아온 것은 발 부상이 나아 후궁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아벨이었다.


(음……또 왔어...)


그렇다.

완전히 경비 시간을 기억해 버린 아벨이 후궁에 놀러 오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피에게 있어서는 후궁을 나갈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니 곤란한 것이었다.


설마 다시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리넷트가 돌아간 6일째에 정리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헤헤, 오늘도 추천의 잡지를 샀습니다!"


요 3일간, 아벨은 거리에 가서 매일 추천의 조잡지를 피에게 사온다.

후궁에서 시간을 때우려고 하는 것 같다.


(아.....이것도 읽어 본 적이 있는 거다)


그리고 아벨이 사온 것은 지금까지 모두 슬라드에게 빌려 읽었던 적이 있던 것들이었다.


"무척 재밌겠네요 "

"아, 감사합니다……"


순진한 얼굴로 권하는 아벨에게 피는 살짝 쓴웃음을지으며 그것을 받는다.

그리고 아벨은 항상 경비가 문 앞에 오고 난 뒤, 다시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 동안 후궁에 머물며 피와 이야기를 하고 간다.

이야기의 내용은 피도 알고 있는 이 거리의 모습이나, 피도 잘 아는 견습 기사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벨 자신에 대해서 이다.


매우 곤란하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한다.

만약 아벨이 그때……후궁에서 인생에 절망하고 있을 때, 와 주었다면, 그것은 매우 기쁜 일이지 않았을까 하고.

이렇게 아벨과 만난 것도 피가 견습 기사를 하고 있었기때문이기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후궁을 찾아 오는 사람이 있고, 같이 웃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혹시 후궁에 머물고 있어도 행복하게 웃고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끝이다.

더 행복한 장소를 찾아냈으니.

거기에는 크로우씨가 있고 대장이 있으며, 쿠인, 콘래드 씨, 골무스, 많은 사람이 있다.

아벨도 거기에 있다.

다시 원래의 후궁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을 생각해서 여기에 와 주는 아벨에게.


마침 경비가 없는 시간, 언제나처럼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아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피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아벨……"

"무슨일인가요? 피님."


아벨이 즐거운 미소를 띠며 웃는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아벨이 이렇게 웃는지도 몰랐다.

쓴 것이 서툴러서 홍차에 설탕을 5스푼을 넣지 않으면 마시지 못한다는 것도 몰랐다.

의외로 말을 잘하고 그에게서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간 적이 있던 가게도 또 다르게 보이게 된다는 것도 몰랐다.


"아벨도 견습 기사이지요……. 그런 입장이라면 저를 만나러 오는 것은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분명 이런 일을 계속하는 것은 아벨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아벨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즐겁게 대화했던 자리에 침묵이 흐른다.

피에는 조금 어색해서 얼굴을 살짝 피한다.

동요한 얼굴의 아벨이 덜그럭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그렇네요. 저, 뭐 하고 있는 걸까요. 피님이 웃어 주니까 신이 나서는……. 폐, 폐를 끼치어 버린 거 같아서……"

"폐 따위가 아니――"

"정말로 죄송합니다!"


피가 무언가를 말 하기 전에 아벨은 달아났다.

아까까지 그가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다.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기분 탓일 것이다.



"나도 설거지하고 후궁을 나가야……"


피는 그것을 달래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겨우 후궁의 정리를 시작한 피였지만 몇분 후, 구보 같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보초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언제나 한가롭게 거닐고 있으니까.


창문에서 발견되지 않도록 밖을 들여다보면 후궁 쪽으로 달려온 아벨의 모습이 보였다.

꽤 서두른 모양인 듯 오렌지 색 머리도, 주근깨가 남은 뺨도, 땀 투성이였다.


"아벨!?"


피가 놀라서 황급히 현관으로 향한다.

피가 아벨을 문 앞에서 맞자 아벨은 양손으로 뭔가 내밀었다.


"여기요!"


그것은 꽃의 묘목이었다.

하얗고 소박하고, 그렇지만 예쁜 꽃.

피의 고향에도 피어 있던 마렛타가 작은병 속에서 예쁘게 흔들리고 있었다.


"화단에 꽃이 없어서 쓸쓸하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뭔가 사오자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좀 쑥스러워서 좀처럼 드릴수가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민폐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마지막이니까.."


분명, 피는 말했던 적이 있었다.

후궁에서 아벨과 함께 지내고 있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화단 쪽을 바라보고"쓸쓸하구나"….


피는 양손으로 소중하게 꽃의 모종을 받고는 아벨에게 밝게 웃어보였다.


"감사합니. 소중하게 키울께요."


그 얼굴을 본 아벨은 살짝 얼굴을 붉힌 뒤, 얼굴을 돌려 "그럼" 하고는 달려갔다.

그 등을 바라보는 피는 중얼거린다.


"그래, 또 봐……"





아벨은 왕성의 정원을 달리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젠장…!)


자신이 한심했다.

조금 생각해 보면 알 것이었다.

그녀는 푸대접 받고 있다고는 해도 왕의 아내.

그것이 젊은 견습 기사와 만나고 있다면 어떻게 되어 버리는 것인가.

자신은 아직 괜찮다.

왕의 아내에게 호의를 가져 버린 못난 견습 기사로서 자업자득인 벌을 받을 테니까.


그렇지만 피님은 다르다.

자신을 돕고, 친절하게 해 준 탓에 무고한 벌을, 그리고 까닭 없는 비방과 또 다른 푸대접을 받게 된다.


(젠장....!)


자신에게 힘이 없음이 원망스러웠다.

피님이 외롭지 않도록…….

그렇게 생각해서 상처가 낫고 나서도 피를 만나러 갔었다.

하지만 그건 민폐 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견습 기사. 그것도 낙오 견습 기사…….

피님을 도우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전부 핑계였으며, 그냥 만나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후궁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는 친절한 그 아이를.

그런 그늘진 곳에 떨어져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살고 있던 그 예쁜 아이를.


자신의 무력함이 , 어리석음이, 사심이, 지금 이 현실이,  분하고 분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달리고 있던 아벨의 귀에 시녀들의 대화가 기어들어왔다.

히스와 자주 말하던 시녀들의 목소리였다.


"아, 크로우님을 만나고 싶어, 만나고 싶어 , 만나고 싶어!"

"너무 집착 하고 있으면 상냥한 크로우님도 싫어하게 될꺼야"

"그래, 그런 곳에 갇힌 측비님처럼은 되지 않게 조심해야지."

"바보 같은 여자겠지. 남의 결혼 이야기에 끼어들면 꺼려지는 건 당연할 텐데."

"그런 것을 하는 시점에서 미움을 받아도 당연한거지?"


"닥쳐! 그 사람을 멋모르고 욕 하지마! 성격 나쁜 것은 너희들이다! 못생긴 것들이!"


아벨은 큰소리로 시녀들에게 외쳤다.

그리고 달려간다.


"뭐, 뭐야 저 녀석"

"갑자기 소리 지르고, 뭐야"


멍하니 시녀들은 중얼거린다.

달려가는 아벨은 마음 속으로 중얼거린다.


(왜 모두 피님을 나쁘게 말하는거야……)


생각하고 보면 시녀들 뿐만 아니라 북쪽 숙소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기사들 사이에서도 피님 이야기가 나올 때는 나쁜 소문 뿐이다.


(그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상냥한 아이였다........

후궁에 들어온 자신을 감싸주었고. 발 부상을 부드럽게 치료했다.

요리는 잘 못하지만 자신과 리넷트를 위해 열심히 만들어 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만나러 온 자신을 상냥하게 맞아 주고, 마지막은 바보같은 자신을 위해 장래를 생각해 주며 주의를 주었다.

그런 상황에 몰려도, 절망하지도 누군가를 비방하지도 않고, 

주변의 사람을 배려하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고 있다.


리넷트가 울었을 때도, 위로를 하는 쪽이었다.

사실은 슬프지 않겠는가.

외롭지 않겠는가.


틀림없이 저 짙은 화장은 눈물 자국을 감추기 위한 것이리라.


(누구도 그 아이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욕만……! 젠장....!)


그 다리가 갑자기 멈추고 그 입에서 망연자실한 것처럼 중얼거림이 새어나온다.


"나도 같지 않은가……"


히스를 빈민이라고, 기사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짜증난다고 상대에 대해 모르면서도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 욕만 했다.

어떤 상대인지도 모르고, 그저 무시하고 깔보고 미워하고 있었다.

계속…….


저녁 바람이 땀이 베인 뺨을 쓰다듬는다.


문득 손바닥을 보면 꽃잎이 한장 남아 있었다.

하얗고 예쁜 그녀와 꼭 닮은 한장의 새하얀 작은 꽃잎.


아벨은 그때 말하지 못한 말을 혼자 중얼거린다.


"언젠가 그대를 그곳에서 꺼낼 테니까."


그것은 한 미숙한 견습 기사가 고독에 사로잡힌 공주님을 위해 한 약속.

말로 표현되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그 남자 밖에 모르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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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공주님 알아서 잘 나갔어


앞화가 설명충이어서 빠르게 한편 더 했습니다.





노예가 될것이라 예상했던 여러분들.........



틀렸습니다 (풉)





피에게는 그냥 민폐놈일 뿐이었습니다.


람보르기니(쿠인)가 있는데 티코(아벨)를 가질 필요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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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얼굴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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