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사막위의 돌고래 2018. 2. 28. 22:57



영애는 느긋하기를 원한다


제1장 느긋한 찻집

01.기적을 소망한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일했던 날들.
학교에서는 배우는 것이 의무였던 것처럼 사회에서는 일하는 것이 의무가 되고, 어느덧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간단한 요리를 만드는 동안에도 인터넷 소설을 섭렵했다.
식사와 독서조차 바쁘게 보냈다.

어쩌다 읽은 소설의 내용은 성깔이 있는 주인공이 악역 영애를 꺾고 그 약혼자를 빼앗는다는 일인칭의 단편.
어떤 식으로 빼앗는 걸까 하는 호기심에서 읽어 보았을 뿐이다.
남작 영애인 히로인과, 백작 영애인 악역의 공방. 결과적으로 악역 영애는 공중의 면전에서 악행이 폭로되고, 약혼자를 빼앗기고 엘리트 학원에서도 쫓겨난다.
히로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고, 해피 엔드.
악역을 꺾고 사랑이 이어지게 되는 해피 엔딩인 것이다.

랭킹 상위가 된 이유는 악역을 여주인공 스스로 보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주 선호되는 종류다.
나는 그 즉시 공격 공격 공격 이라는 행동에 저항을 느낀다.
의논하거나 한쪽이 물러나거나 관여하지 않도록 하면 될 텐데.
뭐, 그럼 이야기는 달아오르지 않으려나?
읽은 직후, 최근 빈번해지고 있던 현기증에 사로잡혀 주방에 쓰러졌다.

의식이 옅어지면서 나는 내가 죽는 것이라고 알았다.
뭐, 괜찮지 않을까?
녹초가 되어 버린 탓인지, 일어날 기력은 없었다.
충분히 열심히 살아간 것이다.
답답하기만 인생이었다.
괴로운 시간만 반복 되고, 행복한 시간이 조금 있었을 뿐이다.
내세는 느긋하고 싶다.
행복한 시간을 잔뜩 보내는 인생이고 싶다.




그런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괴하게도, 임종에 읽었던 소설 세계에 있는 등장 인물 중 한명으로 거듭나 있었다.

여주인공이 아니라 악역 영애 쪽으로 태어났다.
주인공에게 공감하지 않아서일까.
백작 영애인 로냐·카뷔제라.

옅은 하늘색을 띄는 은백색의 아름다운 머리와 푸른 눈의 소유자.
카뷔제라가는 왕도의 동남쪽에 있는 [피오상] 이란 이름의 지역을 관리하고 있다.
지배자라고 해도 좋을 만큼 힘이 있는 가문이다.

후사는 장남인 오빠로 결정되어 있지만, 나도 백작 영애로서 철들었을 때부터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승마와 춤은 물론 예절이나 사교계에 대해서, 머리에 주입되었다.
처음에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해야 한다고 받아들이고 힘썼다.
그렇지만 아직 어린 나는 좀 더 천천히 시간을 갖고싶다고 생각했다.
더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

큰마음을 먹고 어머니께 그 얘기를 해 보니

짝!

따귀을 맞았다.

나의 작은 몸은 카펫 위에 쓰러진다.

"이 무슨 게으름뱅이 같으니! 정말 나의 딸이냐!?"

욕을 하며 어처구니 없다는 친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진심으로 떨었다.

우연히 목격한 다섯 살 위의 오빠까지 비방하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차 도움이 되니까 필요한 연습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노는 시간을 포기했다.
아이답게 놀 틈도 없이, 지시 받은 것을 잘 소화했던 셈인데, 아직 부족한 것인가.
이것이 일반적인 귀족인 것일까.
앞으로 이런 생활이 이어질까.
이것으로는 전생의 전철을 밟게된다.


그렇다면 나는 귀족을 그만둔다.



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소설의 결말 ―― 운명에 따라 엘리트 학원에서 떠난다.
즉, 귀족의 집에서도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곧바로 집을 뛰쳐나가지 않은 것은 할아버지의 존재가 크다.
가족은 따뜻한 정이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매우 상냥했다.
아직 영향력을 지녔으면서도 은거 생활을 하고 있다.

할머니를 병으로 잃은 직후부터 은퇴를 표명하고 작위를 아버지에게 넘겨줬다.
때때로 찾아와 주시면 내 연습은 끝나고 할아버지와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더더욱, 할아버지를 좋아하게 됐다.

장차 반드시 나를 도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차라리 할아버지에게 애원해서 함께 은둔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나의 결혼 상대가 정해지고 말았다.

왕제 각하의 아드님, 슈나이더, 제오란드.
서로의 이익을 위해 부모끼리 정한 약혼자.
그리고 장래, 약혼 파기할 사람.

아름다운 여성이 될 것 같다며 기대하고 있다는 소식을 나는 미소를 지은 채 조용히 들었다.
즉, 장식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팔리는 것 같아 슬프기도 하지만 어차피 미래에 없어질 이야기라고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열 여섯 살이 되기까지 참자. 참고 참으면 반드시.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문득 생각이 스친다.

정말 참기만 하면 될까. 그리고 6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모래 시계를 만들면 얼마나 많은 모래가 쌓여 버릴까.
할아버지에게 받은 모래 시계를 보며 상상했다.

너무 길다.


유리로 된 심플한 모래 시계 속 모래는 마치 에메랄드나 페리도트의 보석을 깬 것처럼 녹색의 아름다운 빛을 뿌리며 사락사락 떨어진다.
시간이 아까우니, 전생에  읽었던 시나리오를 거슬러 볼까.
약혼녀는 어차피 그도 마음 내키지 않을 것이다.
둘이서 원만하게 이 이야기를 없었던 일로 하기로하자.

그렇지만 훗날 , 집을 찾아온 슈나이더는 뜻밖의 말을 내게 했다.

"부모끼리 정한 정략 결혼이지만 사랑하고 싶다. 그러니 함께 사랑을 키우자."

아직 열살도 안 됬는데 성실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슈나이더는 정략 결혼 상대가 아니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나를 보려고 한다.
혹시 소설 같은 운명은 없을지도 모른다.
슈나이더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귀족 생활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가 싹트는 순간이었다.


느긋하고 싶다.
그런 소망이 있다고 말해도 슈나이더는 화를 내지 않았다.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다는 위로의 말까지 해 주어서, 기쁘고도 기뻐서 너무 기뻐서 울어 버릴 정도였다.


공작가의 아들이 약혼녀를 만나러 오면 당연히 연습보다 우선하게 된다.

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정원의 잔디 위나 소파에 늘어진다.

"나와 만나는 시간을 낮잠에 쓰지 마라, 로냐."
"……"
"……응? 벌써 잠든건가? 로냐?"
"……쿠울"
" 자는 척이 아닌가!"

이런이런 하며 어이 없다는 듯 어깨를 움츠리지만, 슈나이더는 그걸 허락한다.
기쁘다.

함께 보낼 때는 철없는 얘기만 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엘리트 학원에서 배울 것의 마법의 종류.
그리고 상담도 했다.

어느 날.담화실에서 슈나이더와 함께 보내고 있을 때.
나의 호위도 겸하고 있던 처리계 청년이 끓인 커피가 미묘했기 때문에 스스로 끓였다.

" 죄, 죄송합니다!……로냐 아가씨!"
"아니, 사과하지 않아도."
" 죄송합니다!"

별로 화가 난 것도 없었는데, 그 청년은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고는 일을 그만두었다.
카뷔제라가(家) 때문일까.
하인은 완벽한 분들 뿐이었기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었지만, 두려움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슈나이더도 아연해졌다.

"로ー냐, 설마 너는 남에게 엄격한 것인가?"
" 다릅니다. 슈나이더."

어느 쪽인가 하면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무르다.
조금 책임을 너무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내가 괜한 일을 하고 버리는 바람에 미안하다.

할아버지에게 부탁해서 다시 고용해 거기서 일하고 있었다.

그 뒤 나는 직접 커피를 내리게 되고, 좀 알아보거나, 시행 착오도 즐기게 됐다.
처음에는 가족에게 사면 되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던 과자 만들기도, 슈나이더가 "제가 부탁한 겁니다"라는 말에 허가되었으므로 계속 했다.
할아버지도 슈나이더도 마음에 들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트 학원인 크리장테 학원에 입학했다.
귀족들은 전원이 그곳을 졸업한다.

1학년, 나는 여자 중 학년 1위의 성적이 됐다.
입학 전부터 피를 토할 정도로 귀신교사의 과외 교육을 받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수석으로 졸업하기 위해서 기숙사에서 학업에 힘쓰겠다고 설득을 성공하며 2학년부터는 집을 나와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여자 1위를 유지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매도되니까, 여전히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하느라 바쁘지만 마법은 즐겁다.
학원에 있어도 수업 사이사이에 공부를 해야했지만, 엄격한 가족의 얼굴을 보지 않는 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긴 듯 기숙사 생활은 매우 만족이었다.

"로냐"

슈나이더와 단둘이 지내던 어느 한가로운 오후.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온실의 정원에서 벤치에 앉아 나란히 커피를 만끽했다.
슈나이더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찬란한 금발과 아몬드형의 푸른 눈의 소유자로 이상적인 왕자님처럼 멋진 남자가 됐다.
그런 그는 내 손에서 컵을 잡아 테이블에 내려두고 양손을 꽉 쥔다.

"키스하자"

열을 띤 푸른 눈으로 쳐다보고 있어 한순간 멍해져 버렸다.
약혼녀가 반드시 연인이 된다고는 생각 못 했지만, 서로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아도 나와 슈나이더의 관계는 단순한 약혼자관계가 아니다.
연인 관계라고 해도 지금까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그 정도의 스킨십 뿐이었다.
손등에 키스를 하거나 이마에 잘 자라고 키스를 받기도 했다.
평범한 인사이다.

그리고, 지금 슈나이더가 바라는 것은 입술.

"그건……졸업 후라고 했죠?"
"키스 뿐이다. 싫은가?"

솔직히, 어떨까.
시나리오대로 운명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거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도 나를 바라보고, 사랑해 주는 슈나이더를 믿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슈나이더가 나를 해피엔딩으로 이끌어줄지도 모른다.
사랑이 미래를 바꾸어 줄지도 모른다.

받아들이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상상 이상으로 긴장을 했다.
심장은 두근 두근 쿵쿵 하고 뛰었고 ,
몸은 경직되었다.

"로냐……사랑해 "

속삭이는 슈나이더의 입술과 내 입술이 겹쳐진다.
눈을 뜨면 조금 뺨을 붉히고 만족스럽게 웃는 슈나이더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미소를 보여줬다.


그것은 기적이 있다고 믿었던 나의,

첫사랑과의 첫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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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작품을 잡아서 놀라셨다구요?

그래요

저도 놀랬어요.


걱정마세요

재미없으면 때려치울 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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