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제39화
마차에서 내리자 돌벽이 눈앞에 보였다.
녹색 숲 속에 파묻히듯 존재하는 보루는 자주 있는 커다란 하나의 탑 형태가 아니라 세개의 중소 규모의 건물이 었다.
그 때문에 멀리에서는 좀처럼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고 다가가서야 겨우 건물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착했군요. 여기가 하르벨의 보루입니다"
마차에서 내린 알프레드가 두 사람 몫의 짐을 짊어지며 돌벽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벽 근처를 따라 걷자 잠시 후 문이 있는 입구에 도착했다.
거기서 두 사람이 문 앞에 당당히 서 있었는데, 문지기 답지 않은 용모의 사나이가 눈에 들어왔다.
장년이었고, 오른쪽 뺨에 큰 상흔을 가진 암석처럼 거친 풍모이다.
나는 그의 군복의 장식으로 소장의 직위를 가졌음을 알아채고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발 소장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그라크님, 이런 먼 곳 까지 왕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발 소장은 이를 드러내며 호쾌하게 웃고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배후에서 나무처럼 조용히 서 있던 알프레드를 발견하곤 눈을 가늘게 뜨며 그에게도 말을 걸었다.
"알프레드, 오랜만이구만! 잘 지내고 있었나"
"네. 라발전도 건강한 것 같아서 안심했습니다."
"그래,그래."
알프레드의 어깨를 정답게 두드리던 그는 문지기병의 시선을 느꼈는지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언제까지나 여기서 논의보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라발 소장은 우리의 선두에 서서 보루 속을 걸어간다.
뒤쳐지지 않으려 빨리 따라가면 견고한 석조 건물과 군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휴식 중인 것일까, 밖에 설치된 긴 의자에서 쉬고있는 병사는 겉옷과 신발을 벗고 누웠다.
무기고 앞에 서있는 또다른 병사는 친구로 보이는 다른 병사들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아무 검문도 없이 또 다른 병사들이 드나들고 있다.
내가 무심결에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면 그것을 본 라발 소장이 내 시선의 방향을 눈을 부릅떳다.
"네놈들, 뭐 하고 있나!!"
그 일갈을 들은 병사들은 서슬 퍼런 라발 소장을 보고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이며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아 인형처럼 경직되고 말았다.
그 반응만으로 만족했는지 아니면 나중에 뭔가 할 것인지, 이 자리에서는 그 이상의 일은 하지 않았고, 라발 소장은 발을 옮긴다.
나는 이 안을 조금 걸었을 뿐이지만 왠지 모르게 떠도는 늘어진 분위기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 내가 있던 곳이 최전선이었던 것도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보루로서 이건 괜찮은 것일까.
건물 안의 어느 한 방에 들어가면 초라한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어 우리는 그곳에 앉았다.
"이야, 정말 잘 와 주셨습니다. 이제 병사들도 활기를 띠고 우리 진영은 평안 무사입니다! 여긴 워낙 사기가 낮아서요! 정말로 사기가 낮아!"
입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나온 그 말에는 라발 소장의 심정이 다분히 포함됐다.
"저는 이곳의 사정을 잘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까지 심한 건가요?"
"제 입으로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것이지만, 병사들에게는 요충지라는 자각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그게』 살고 있어서요."
"하르벨의 괴물..입니까?"
알프레드가 라발 소장의 말을 보충했다.
이 곳과는 떼어낼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 나라의 주민이라면 누구나 그 일을 알고 있었다.
" 그렇소. 그 때문에 국경 가까운 이곳임에도 불구하고 헬리오트에 대한 경계를 모두 잊어렸지."
그 거구에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붉은 눈동자에 자신의 운명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게 널리 소문난 괴물이 이 땅 근처에 살고 있다.
바람을 타고 파괴한 마을의 수는 한 손으로 셀 수 없다.
그 피해는 로라이트도 헬리오트에도 골고루 미친다.
그러니 이곳은 안전하다.
만일 군대같은 대규모 인간의 집단을 목격한다면, 절망할 정도로 집념 깊은 괴물이 쫓아오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의 헬리오트인이 이 땅을 뚫고 입국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과연"
나는 맞장구를 치며 이전 리카르도 저택에 침입한 습격자의 일을 떠올렸다.
이 땅은 확실히 요충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야기는 바뀝니다만 하르벨에도 『 영웅 』이 있다고 들었는데 뭔지 아시나요?"
"그 일이면...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
라발 소장은 턱에 손을 올려 기억을 더듬듯 답을 줬다.
"우리 군까지 찾아오는 일은 없으나 이 땅의 유력자에게 빌붙고 있다고 해서. 뭐 , 이렇게 그라크님이 오신 것이니 바로 그 가면도 벗겨지겠지요"
"그렇게 간단히 될까요?"
"에이가벨 경이 인정하고 있는 사람이 수도에서 왔다. 바로 그 사실만으로 그라크님이 생각하시는 것 보다 간단히 끝날 겁니다. 시골의 소문은 하루만에 도는 법이니까요. 내일이면 도망치지 않을 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공작가의 힘은 이런 때 도움이 된다.
에이가벨가의 문장이 든 만년필을 받아 와서 다행이다.
그레이엄이 건내 줄 때의 싫은 듯한 얼굴을 떠올려 그만 쓴웃음을 짓고 만다.
"왜그러십니까?"
"아뇨, 그냥 생각하며 혼자 웃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발 소장과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낮은 땅 울림 같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조용"
가장 빨리 사태를 짐작한 소장에게 지시받아 영문을 모른 채 잠자코 그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소리는 그치지 않을 것 같이 가끔 끊기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밖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의 진동으로 책상에 놓인 물건이 작은 소리를 내며 떨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냉정한 표정 그대로 라발 소장은 창 밖을 엿본다.
밖에서 들리던 새소리도, 사람 소리도
이 섬뜩한 소리 이외는 전혀 들리지 않게 된다.
새 소리도 사람의 소리도 그 큰 소리를 무서워하는 것처럼 존재감을 지웠다.
무언가를 확인한 라발 소장은 안심한 표정을 짓고 우리에게 잠시 대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잠시 후 소리가 겨우 진정된 것 같다.
사람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린다.
"지금 것이 괴물 소리입니다. 이렇게 가끔 들리지요. 일단 파수꾼이 항상 있어 가까이 다가오면 알리도록 되어 있거든요. 이번에는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만약 다시 그 소리를 듣는 일이 있으면 나무 그늘에라도 모습을 감추는 것이 좋습니다."
"창가에 갔던 것은 신호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군요."
"그 말씀대로 입니다! 그라크전.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동안 그것이 필요할 겁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창밖에 시선을 돌려 봤지만 거기에선 짐승의 그림자를 찾지 못 했다.
보루의 망루에 늘여진 깃발의 색깔이 산뜻한 청색으로 빛나고 있다.
"저것이 표시입니까?"
"청색이 안전. 노란색은 가까움. 적색은 위험 으로 정해놨습니다. 황색의 깃발일 때는 숨을 죽이고 있죠."
"적색일 때는 어떻게 하나요?"
"그때는 각오를 정할 뿐이죠."
간단히 말한 어조와는 달리 얼굴은 진지했고 가벼운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밖의 소리는 이미 평소와 같은 양상이었으나, 소리와 함께 느껴진 기분 나쁜 압박감의 잔해는 확실히 내 안에 남겨져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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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보러 왔더니
괴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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