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사막위의 돌고래 2017. 12. 23. 12:50

새벽녘



제3화



그리고 얼마간 

며칠 간격으로 나에게 면회자가 나타났다.


모두 내가 조치를 취한 자들이다.

당시에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치료에 임하고 있어 어느 정도의 인원을 처리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빈도라면 아무래도 처음 상상했던 것보다 많은 것 같다.


처음의 말르그씨 정도는 아니지만,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든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로 예의를 갖추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면회인이 나타났다고 알려왔기에 평소처럼 몇시간동안 잤을 뿐이지만 적어도 표정만은 가꾸어 그 사람을 맞을 준비를 한다.


"실례합니다"


목소리가 문 너머 쪽에서 들렸다.

성숙된 낮은 목소리였다.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 모습에 나는 놀랐다.


태양 빛으로 빛나는 금색의 머리와, 푸른 하늘을 담은 파란 눈동자.

조각보다 단정한 얼굴과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순백을 기조로 한 기사용 예복.

허리에는 실용성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아름답게 장식된 한 자루의 검을 꽂고 있다.


그림보다 더 그럴 듯한,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말 그대로 기사였다.


기사 계급이 귀족 계급으로 편입되어 있지만, 동시에 군사 엘리트다.

왕족의 고귀한 분들의 호위 임무만 아니라 전시에서는 화려하게 지휘도 한다.

초라한 일개 마술사인 나에게 있어선 천상인인 것이다.

그나마 가꾸었던 표정 마저도 헛되어 버렸다.


"하루카, 그라크님. 저는 리카르도 메르챠스・블람디 라고 합니다."


우아하기 그지없는 인사를 눈앞에 선 보였다.

아마 귀족식이라고 여겨지지만, 물 흐르는 듯 한 그 행동은 세련되어 있었다.

계속 얼굴을 멍하니 있는 것도 실례일거라 생각해 적어도 겉모습의 동요는 감췄지만 마음속은 폭풍우의 한복판에 있다.


왜 이런 분이 나를 만나러 온 것일까.


"블람디라고 하면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백작가의 분인가요?"

"네.아버지는 백작의 작위를 받고 있습니다. 나 자신은 셋째 아들입니다만, 군에 재적하고 있으므로 기사작입니다. 역시, 박식하십니니다"


하늘에 축복받은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것만으로도 방 안이 꽃이 핀 듯한 생동감에 휩싸였다.

미인이라는 것은 미소만으로 행복한 기분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눈의 보양은 이것을 말하는 것 인가.


"그래서 블람디경은 어떤 용건이신가요. 나 같은 것이 블람디경의 뜻을 이룰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요."


곤혹진 목소리로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로 흔든다.


"아니요. 그라크님.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잊으신 겁니까. 당신께서 목숨을 구하신 일을."


블람디경의 얼굴을 보았다.

내가 치유했던 자 중에 있었던 걸까.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었기에 잊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처럼 특징적인 얼굴이면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에게 블람디경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억하지 못 하신 것 같네요. ... 어쩔 수 없죠, 그라크님은 죽음의 문턱에 계셨는 걸요. "


쓰러지기 전이나 그 근처에 치유했던 누군가일까.

그때라면 상대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움직이던 기억이 있다.


블람디경은 먼 눈을 한 뒤 그 때 일을 생각해냈는지 뜨거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전장에서 의연하며, 죽음을 바랄 뿐인 어리석은 나를 질타하고 격려하고 지도했습니다. 그 정도로 마음이 동요된 적은 없습니다."


질타했던 기억은 하나 밖에 없다.

설마. 아니, 얼굴은 어땠었지.

흙과 그을음에 물들어있어 잘 알 수 없었었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라크님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삶을 찾았습니다. 귀하가 눈 앞에서 쓰러졌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그 후에 도착한 원군에게 치료를 맡긴 것은 저입니다."


틀림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화풀이한 청년이다.

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였다.

백작가의 삼남에게 욕설을 했다니.

감옥에 넣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럭저럭 생명의 은인이니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다려, 기다려봐.

냉정하게 되자.

현재 블람디경은 호의적인 태도다.

섣불리 떠들어 책망을 받기보다는 상대의 태도를 봐야 한다.


"...생각났습니다. 블람디경. 상처의 상태는 어떠신가요?"


내가 생각났다고 말하자 얼굴을 빛냈다.

이 태도를 순순히 믿는다면 복수가 목적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산전수전을 격었을 귀족님이다.

의심은 풀리지 않는다.


"피를 멈추고 주셨기에, 나중에 치유자에게 치료시켜서 지장은 없습니다 "

"그거 다행이네요. "


이 보잘 것 없는 나도 남에게 도움이 조금이라도 될 수 있다면 사회에 있어 좋다고 말 한 것 같은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뺨을 느슨하게 하면, 블람디경은 어째선지 내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 이상한 표정이라도 했던 것일까.


잠시 말 없이 블람디경은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내가 당황하면서 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침대 옆에 한쪽 다리를 짚고, 시선의 높이를 같게 한다.


눈을 맞추는 것 이상의 다른 뜻은 없겠지만 동화 속 공주라도 된 기분이다.

기사님께 무릎을 꿇게 할 수는 없기에 거둬 달라고 간청하려 했지만, 나오려던 목소리는 블람디경의 말에 막혔다.


"도박을 성립되었고, 그라크님은 승자가 되었습니다. 운명의 신에게 축복 받은 이여. 부디 증거 받아주세요."


그렇게 엄숙하게 말한 블람디경은 고개를 숙이고 기사의 예를 갖추었다.

절대로 시선을 맞추는 자세가 아니다.

기사가 주로 하는 것이다.


깜짝 놀란 채 블람디경의 말의 의미를 음미했다.

도박이라는 건 무엇일까.


음.....도박... 도박...도박!?


지금까지 잊고 있던 자신의 말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내가 죽으면 좋을대로 죽어라.

내가 살아 있으면 나를 위해 살고 나를 위해 죽어라.


거만하고 불손한 태도가 되살아났다.

어리석은 일이다.

자만심도 심하다.

도대체 왜 말했던 걸까 나는.

이 청년은 그것을 고지식하게도 실행하러 왔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뻣뻣한 외침이 내 목에서 울렸다.


"사람이 사람을 취하는 것 따위...! 저는 이 무슨 바보같은 말을 했던 것입니까. 여하튼 살아남은 그 목숨,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블람디경은 팟 하고 얼굴을 올렸다.

미간을 모은, 분노의 표정이 거기에 있었다.


"제가 말했다시피. 그라크님의 눈동자 속에서 삶을 찾았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알고도 저를 내치시는 겁니까."


나는 누군가에 모든 것이 바쳐질 만큼 강한 의지 따위 가진 적 없었다.

하물며 한번 만났을 뿐인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그의 진심이 의심된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변합니다. 지금 느껴지는 그것은 한때의 열병 같은 것. 지나면 모두 흐릿하게 되겠죠. 저는 일개 마술사입니다. 잘 생각하세요."


내가 말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블람디경은 깜짝 놀란 후, 답답한 마음을 표출해 말을 이어간다.


"왜 알아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내가 얼마나 환희에 찼는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얘기하고 있는 거 같다.

이성적인 내 말은 그의 감정에 전혀 닿지 않는다.

블람디경에게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미치광이 같았다.

나의 마음이 떠나가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가 움직일 수 없는 나의 오른손을 천천히 이불에서 끌어내 잡았다.

빼내고 싶었지만 아직도 힘이 들어오지 않는 무력한 팔로서는 그것도 불가능했다.


"기사는 귀족에서 가장 하위에 해당합니다. 그것조차도 한 대뿐인 덧없는 것. 하지만 기사에게만 허락된 특권을 아십니까. 지금은 사라져 사람도 거의 없는 금주의 사용이 허용된 것을. "


그렇게 말하고 우아하게 웃는다.

아까의 꽃 같은 것은 아니다.

독이 있는 웃음이었다.


그가 말하는 것에 전혀 짚이는 게 없었지만 그래도 싫은 예감만은 뼈저리게 느껴졌다.


"하늘의 강건한 대장부, 밤의 아름다운 숙녀여. 나의 맹세를 듣고 있다면 눈앞에 보여 주시오. 영혼으로서 주인을 정하여 그 어떤 위기가 닥치거나 그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면 나의 피와 육신으로 치욕을 씻겠습니다. 웃음이 가득한 것만이 나의 본망입니다."


"무엇을...!"


낭랑하게 말하는 소리는 분명히 주술일 것이다.

주술은 마술과는 달리 누구든 얼굴을 찌푸릴 종류의 것이 많다.

그것은 마법을 쓰는 마술과는 달리 주술은 술사의 생각을 매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적이나 효과와는 관계없이, 술사는 큰 부담을 진다.

그 부담 때문에 주술 연구의 대부분이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찾을 정도이다.

함부로 할 만한 것이 결코 아니다.


"멈추세요!"


비명도 헛되어, 그 주술을 읊는 말은 멈추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드높이 축하를 하소서. 영구한 인연을 나눕니다."


잡혀 있던 오른손의 손가락 끝에 전류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손끝이 깨물렸다.


블람디경은 황금색 속눈썹을 떨며, 감회를 드러내듯  핏방울을 혀로 핥았다.


푸른 눈이 덮히고, 맛있을 리도 없는데도 정성껏 핥았다.


너무나도 그림이 되는 광경에 순간 모든 것을 잊고 넋을 잃고 말았다.

나의 오른손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름다웠다.


그러나 광경은 갑작스럽게 깨졌다.

나의 피를 삼킨 블람디경의 입술에서 벌레처럼 까만 무언가가 스며나 온 것이다.


"...!"


숨을 멈추고 경직했다.

잘 보면 작은 벌레 같은 것은 작은 글자였다.


속속 쏟아져서 쇠사슬처럼 줄지어 그의 표면을 누빈다.

그것도 한두개가 아니다.


천, 만을 뛰어넘는 막대한 수로 가득 메워지고, 머리카락 하나조차 원래의 색깔을 잃어버렸다.

완전히 검은 색으로 뒤덮인 얼굴이 웃는다.

눈동자 속조차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것으로 저의 생각을 아실 수 있으셨나요 "


순진한 그 소리와 함께 검은색이 녹아 사라졌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 원래의 미남이 나타났다.


"블람디경, 도대체 무엇을 한 건가요?"

"안심하십시오. 그라크님에게 불이익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나의 몸에 주인의 이름을 세긴 것일 뿐입니다."


당연한 듯한 어조에 현기증을 느꼈다.


즉, 이 남자는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강매한 것이다.

아까의 문자는 몸에 녹아, 앞으로도 블람디경을 계속 묶어 둘 것이다.

그 양으로 살펴보건대 내가 명하면 따르지 않을 수 없고, 가장 강제력 있는 주술이 확실했다.


"주술을 푸는 방법은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월 속에 사라졌습니다."


그거 상냥하게 말할 내용인가?


"부디 리카루도 라고 부르세요. 저는 이미, 그라크님의 종복인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지 무리한 분이라고 오기 전에 알고 있으면, 어떻게든 못 들어오게 했을 텐데요. "

"그 경우에는 들여보내 줄 때 까지 몇번이나 걸음을 옮겼을 겁니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큰 한숨을 토했다.


"리카루도, 나는 이렇게 몸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잘못하면 평생 이대로 일지 모릅니다. 당신에게 머슴 같은 일을 맡기는 일도 있겠죠. 그래도 원하는 건가요?"

"원하는 바 입니다"



즉답했다.


그의 마음은 지금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역시 문제도 몇가지 떠오른다.

아무래도 평민인 주인과 귀족의 종 이라니, 모순이다.

다양한 제삼자가 얽히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의 집은 어떤가.

백작가에게 대단한 불이익이라 생각된다.

눈에 거슬리다고 생각한다면 죽일 수도 있다.

주위에는 알리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도 있다.


"귀족에게 월급을 지불 할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상관 없습니다. 몇가지 사업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유능한 인재에게 그쪽은 맡기고 있으므로, 안심하십시오."


규모가 달랐다.

쓸데없는 참견이었다.

이 지경까지 완고한 사람을 처음 만났다.

완패다.


"그럼 나는 하루카라고 불러주세요. 그라크는 스승으로부터 받은 이름이니까."

"잘 알겠습니다, 하루카님"


기쁘게 나를 받드는 사람을 보면서, 역시 입장이 반대여야 하지 않냐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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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죤 변태새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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