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제18화
처음으로 들어선 리카르도의 서재는 양옆을 책장으로 채우고있고, 안쪽에는 서류가 쌓여 있는 검은 책상이 놓여있었다.
그 앞에 접대용 의자와 둥근 책상이 있어 실용성을 추구한 인테리어다.
안쪽 책상에 앉아 있던 리카르도는 내가 방문을 열자마자 서류에서 손을 떼고 일어서서 문 앞에서 선 나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를 들었던걸까.
창 밖은 이미 밤의 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런데도 방 안은 촛대의 불빛으로 충분히 밝았다.
리카르도가 안내해 준 둥근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기사 작법인지 모르겠지만 정면의 의자 옆에 선 채인 리카르도에게 착석하도록 허가했다.
리카르도로서는 다른 사람이 없는 자리라면 어디까지나 주종을 고수하고 싶은 것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나보다 훨씬 아름답고 물흐르는 듯 한 동작으로 의자에 앉았다.
몸짓까지도 귀족다운 이 사람은 지금 등을 구부리고 앉아 나를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 역시 낮부터 줄곧 생각하고 있는 말이 있지만, 입 안이 건조해서 버릴 정도로 긴장했다.
"라이달님에 대한 일은 이미 알고 있죠?"
이것은 그저 단순한 확인이다.
리카르도는 근소하게 눈높이를 낮추고 긍정했다.
"네"
"다시 올 기색이었지만, 다음은 어떻게 할까요"
"안심하십시오. 아그네스타 각하와는 상업상의 거래도 합니다. 이번 일에 대해 넌지시 전하면 됩니다. 이해를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으니까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폭주하는 열정을 다시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한시름 덜었다.
하지만 나는 드디어 그 무서운 일을 가만히 놔둘 수 없게되었다.
자신이 바로 당사자인이상, 간과하면 안되는 큰 문제다.
벽걸이 시계의 초침이 나에게 다음 말을 하도록 재촉하고 있다.
정면에 앉은 리카르도는 그저 묵묵히 있을 뿐이다.
그의 푸른 눈이 조용히 나를 지켜봤다.
"저는 "
오랜 시간을 두고 첫마디를 짜냈다.
떨리는 손 끝을 쥐어 누르고, 등에서 느껴지는 으스스한 한기를 견뎌낸다.
그 다음에 낸 소리는 산들바람에도 사라질 것 같은 허약한 것이었다.
"누구인 것인가요?"
답을 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그의 입술이 열리는 것을 단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련한 눈빛인 나의 기사가 낭랑하게 선고했다.
"전쟁을 다스린 마술사. 뛰어난 치유술사. ···구국의 영웅."
리카르도.
저는 그 말을 가장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워해야 되는 건지 뉘우쳐야 되는 건지 걱정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복잡한 감정이 가슴 안에 맴돌이친다.
머리를 양손으로 끌어안자, 무너져버린 마음을 대변하듯 주르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불리기까지 나는 살인을 저질렀고, 그렇게 불릴만큼 나는 사람에게 원망받고 있다.
전장의 일은 나에게있어 자랑할 것이 아니라, 눈을 피하고 싶은 과거일 뿐이었다.
평온을 되찾아 안녕을 발견한 지금에서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영웅.
이 얼마나 찬란하며 얼빠진 호칭인가!
그 칭호가 너무 무거워 떨쳐버리고 싶다.
너무 답답해서, 나는 이성도 없는 작은 짐승으로 변했으면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비록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음 소리가 입에서 샜다.
그런 나에게 위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카님, 제가 있습니다. 당신의 검이자 방패가 되겠습니다."
어느새 옆에 선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모습으로 강하게 말했다.
"모든 것에서 지켜 드리겠습니다. 두려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끌어안고 있던 머리를 들고 바라본 리카르도의 눈에서는 빛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납득하고 비뚤어지듯 입가를 추켜세웠다.
그것은 무척이나 지친 웃음이 되어 버렸다.
"멀리 떨어뜨려 놨던 거군요."
한가했던 나는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고, 마음대로 혼자 삐쳐 있었다.
깨닫고 나서 되돌아보면 이제야 여러가지가 보인다.
서민은 들어가지 못하는 병원에 입원했던 것은 왜인가?
리카르도가 싫어하던 사교에 돌아선 것은 언제인가?
저택에 돌아오지 못한 것은 내가 뭐라고 말한 뒤였던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동안에도, 지금 이 때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지켜줬던 리카르도의 숨결을 겨우 깨달았다.
"저는 당신에게서 얼마나 혜택을 받았던 거죠."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고 한가지 짚이는것이 있었다.
나를 밖에 내놓기 싫어하는 것과 알프의 존재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보인다.
나는 앞으로도 리카르도를 필요로 할 것이다.
과거는 결코 망각을 허락하지 않은 것 같다.
검은색의 불길한 손이 내 발목을 잡아 나락으로 빠뜨리려 하고 있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거의 확신하고서 리카르도에게 물었다.
"목숨이 노려지고 있습니까?"
눈을 내리뜬 리카르도는 원망하는 말을 했다.
"당신의 총명함이 지금은 밉습니다."
역시.
모든 게 끝나는 것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전쟁의 한복판이며, 리카르도가 눈을 덮어 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늘까지 평화로움이야말로 꿈이었다.
"알프는 저의 호위인가요?"
항상 내 뒤에 버티고 있던 모습을 떠올린다.
검을 잡는 손을 가진 어색한 사용인.
고용된 것도 내가 집에 머물기 시작했을 때와 비슷할 정도.
알아차릴 요소는 얼마든지 나뒹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에 나는 눈을 주지 않았다.
"용병 알프레드. 당신 다음으로 이름을 날리던 남자입니다."
"... 들은 적 있습니다. 용감한 용병이 있다고."
설마 이렇게나 가깝게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용병 답지 않은 온화한 얼굴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용병이라는 것은 돈을 주고 고용했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가장 무훈을 세운 남자에게 사용인 비슷한 일을 시키는 돈은 얼마일까?
"당신이 한 일을 말하세요. 리카르도. "
거짓을 말할 기미가 있으면, 처음으로 그에게 『 명령 』하는 것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리카르도에 말했다.
"전부."
----------------------------
==============
모든 것을 눈치채버린 미소년에게 미남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